[기고] [김종복 수필집, 아름다운 반칙] 아직도 신기한 그 사람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4-04-01 14:53:50


김종복 수필가

부산 출생

전 강원 중·고등학교 영어교사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

2013'월간 수필문학' <도보여행><고양이 일기>로 등단

전 춘천수필문학회 회장,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강원수필문학회,
강원문인협회, 춘천문인협회에서 동인활동

 

 

아직도 신기한 그 사람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프로그램 제목처럼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궁금한 게 많다.


궁금하면 오백 원하던 개그가 한때 인기를 끈 것도 사람들이 늘 궁금해 하며 살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 좋은 곳이 학교였다. 지역사회의 일반인들도 궁금하면 학교로 전화로 묻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의 인터넷 검색창 역할을 학교가 했다. 나 자신도 궁금한 것들을 전공한 동료 교사로부터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에 걸어서 퇴근하다가 한잔 걸치는 허름한 막걸리집은 지금 생각하니 매우 낭만적이었다
. 그 실내 포장집을 나는 아카데미 하우스로 생각했다. 철학, 역사, 과학, 미술, 문학을 술잔 속에 담아 마셨고, 심지어 노래도 불렀다. 너그러운 빈티지의 시간이었다. 소설가였던 선배 교사가 늘 그 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요새로 치면 스마트폰 검색창 같았다.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였다. 정치, 경제, 예술은 물론이고, 한시에도 능통하여 이백과 두보의 시를 술술 외며 풍류를 넘치게 했다. 고운 소리는 못되어도 가사는 정확한 팝송도 심심찮게 불렀다. 선생들은 그의 박식함에 늘 놀랐고, 그는 우리의 경청과 경탄을 즐겼다. 그는 암기의 왕이고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8
년 연하의 나를 동생처럼 여기며 나의 랜덤 질문에 늘 답을 주었다. 그는 나의 지식의 창고였다. 젊은 날에 신춘문예 소설가로 등단한 그는 글도 잘 썼다. 학교장의 연설문은 그가 썼고, 교지도 그가 만들었다. 박식한 선배의 학력이 궁금했는데, 그는 스스럼없이 학력을 밝히곤 했다. 시골 교육청 급사를 하면서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고학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나와, 경희대학교 법대에서 다섯 명만 뽑는 특별장학생이 되었다. 학비는 물론이고 의식주를 다 제공해주었다. 그야말로 대학에서 학생을 사오다시피한 준비된 고시생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법학보다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소설가 황순원 교수의 강의를 청강하다가 법대의 기본 학점을 놓치고
, 특별장학생 자리에서 잘렸다. 등록금을 낼 수가 없어 자퇴하고, 다시 춘천 교육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또다시 중등교사 영어과 자격 과정을 서울대학교에서 수료하고 중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소박한 학력이지만, 젊은 날에 이미 영민함을 인정받았던 분이다.


그의 유식은 어디서 생겼냐고 물은 적이 있다
. 그의 박식의 원천은 엄청난 독서량이었다. 눈 오는 날 술 마시다가 그의 연립주택에 딸린 지하 방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엄청 많은 책이 사면의 벽을 채우고 있었다. 거의 다 읽은 책이라고 했다. 문학 재능이 뛰어난 그는 결국 신문사 논설위원이 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송별연 자리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 때문에 그리 울어본 적이 내겐 처음이다.


선생 박봉에 딸 다섯을 내리 낳으면서 결국 여섯 번째 막내아들을 얻었다
. 모친의 손자 집념을 묵묵히 실천한 그는 정말 대단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던 아내의 간호를 위해 신문사가 만류하던 논설위원 주간직을 놓았다. 몇 해 전 사모님은 막내아들까지 결혼시키고 세상을 떠났다. 백세 가까운 노모를 혼자 모시고 힘들게 살아오다가, 최근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으로 모셨다며 비로소 안도했다.


팔십 나이에 자유를 얻고
, 자그마한 시골 땅에 갖가지 농사를 짓고, 밤이 오면 이백과 두보의 시를 암송한다. 매일 담배 한 갑을 태우고 소주 한 병을 마시면서 한시(漢詩) 300여 수를 아직도 암기할 수 있다. 그의 암기력을 보면, 술과 담배와 나이가 전혀 관계가 없으니, 정말 신기하다. 산속에서 농사를 짓는 자연인의 땀과 무심(無心)의 마음이 그의 건강의 비결인 것 같다. 나는 젊은 날에 빨리 알고 뽐내고자 다이제스트로 된 책을 즐겨 읽었다. 선배는 줄거리보다 그 세세한 과정의 서술이 중요하다며, 시간이 걸려도 정독하기를 권했다. 돌아보니 그의 독서법이 옳았다. 인터넷 검색창이 언제부터인가 선배의 유식 창고를 대신하게 되었다. 온갖 궁금한 것들은 이 창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분께 물을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나는 혼자서도 유식을 찾고 뽐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검색창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한 달에 신간 책을 열권씩 산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지 돈 아깝게 사느냐고 하면, 책은 밑줄을 그어야 내 지식이 된다며 껄껄 웃는다. 젊던 날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원고료가 생기는 날이면 후배를 불러 술과 음식을 사주기를 즐긴다.


종심
(從心) 단어를 접했다. 칠십을 넘으면 마음대로 행해도 별로 틀림이 없다는 공자의 그 말에 솔깃했다. 나도 지혜자라고 칭하려다가, 그분을 생각하며 그 종심(從心)을 거둔다. 내겐 여전히 그분에게 구할 일이 많고도 많다. 그분은 젊은 날의 지식을 넘어 지혜의 검색창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늙을수록 자랑질하지 말라 했지만 나는 자랑하고 싶다
. 칠순 넘은 내 나이에도 여전히 멘토라 부를 수 있는 그분이 아직도 계심은 큰 자랑이며 큰 복이다. 내 이름 끝 자 복()이 늘 나와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