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창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3-05-23 12:34:59


황장진 작가

문단데뷔 : 1991. 문학세계수필 신인상

강원수필문학회·청계문학회 고문

수필집 : 가나다 타파하, 청년들이여, 고개를 들라, 참 바보

전자 시집 : 항상 장대하라, 항상 빼어나라, 한우리 연구

 

6화 창


, 너는 참 팔자도 좋다.


1
년 내내 바깥 공기만 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봄이면 가지가지 꽃향기, 여름이면 넉넉한 숲 냄새, 가을이면 그득한 오곡백과 내음, 겨울이면 하얀 눈송이의 입맞춤.


아침이면 동녘 햇살 안겨들고
, 저녁이면 달빛 별빛과 사랑놀이. 순한 바람이면 가슴 열어 방안으로 들게 하고 센 바람이면 가슴 열고 안마를 즐긴다. 먼지들이 날아들면 소리 소문 없이 품어 있다 보면, 비가 와서 말끔하게 씻겨준다. 약삭빠른 주인 손에 닦여 나가기라도 하면 고마워서 활짝 웃기만 하면 그미도 빙그레.


바깥에서 부르릉부르릉 차 소리 요란하면 틈새로 새어 들어오지 않게 바짝 긴장하여 꼭꼭 닫고 부동자세
. 이슥한 밤 술꾼들이 왁자지껄 지껄이는 소리도 매한가지. 집안에서 떠드는 소리는 애써 감춘다. 입이 무겁기로는 차돌 같다. 방안의 고리타분한 냄새는 얼른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


방을 쓰는 사람 따라 울고 웃는다
. 징징대는 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레 얼굴 찡그리지만 호호대는 소릴 들으면 얼른 미소 짓는다. 하지만 내 얼굴은 한결같이 무표정일 수밖에 없다.


태어날 때부터 조물주께서 표정 관리할 수 없게 평생토록 환한 얼굴 하나뿐으로 살게 만들어 줬다
.


인간들이 낯에다가 그리거나 붙이거나 자르거나 깨트리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주인 입맛을 맞춘다
. 모양은 많지가 않다. 네모꼴이 가장 많다. 직사각형이 제일 많으나 어떤 때는 정사각형이 되기도 한다. 원통형이 되기도 하고 마름모꼴이 되어서 보란듯이 뽐내기도.


주인이 집을 자랑하기 위해서 특색있게 만든 듯
. 직사각형이 만들기 가장 쉽고 관리하기 쉬운가 보다 많다.


신세가 얄궂어서 볼 것 안 볼 것 다 보며 산다
.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거실 창이 되면 별의별 것 다 보며 지내니 심심치 않다.


일하는 꼴
, 노는 꼴, 밥 짓는 꼴, 밥 먹는 꼴, 정담을 나누는 꼴, 다투는 꼴... 요지경 속이다.


침실 창이 되면 맨날 커턴 신세
! 캄캄한 밤중에 안쪽까지 두터운 막이 가려 갑갑하다. 하지만 어쩌랴. 찍소리 못하고 끙끙 앓다가 아침이면 활짝 열려 고대하던 해방을 맞아 만세!


학교 교실 창이 되면 복을 받은 거
. 매주 마다 한 번 정도는 걸레 맛을 본다. 고사리손이든 억새 같은 손이든 박박 문질러 깨끗하게 몸을 닦아 준다.


코로나
19야 어서 사라지거라. 그래야 우리도 자주 몸단장을 받을 거 아닌가. 공장이나 창고의 창이 되면 우린 도토리 밥 신세! 언제 걸레 맛을 볼는지 기약이 없다.


창이 되어도 고층빌딩 신세는 되지 말아야 한다
. 세계에서 제일 키 큰 빌딩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있는 163823m 높이의 부르즈 할리파’, 삼성 물산에서 지은 건물 자랑스럽다.


124
층 높이의 전망대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어있는 창이 되면 늘 조마조마한 삶이다.


복이 많기로는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상점이나 회사 공공건물의 출입문 창이거나 부지런한 가정주부가 있는 집의 창이다
. 매일같이 아니면 사흘돌이로 말끔하게 씻어주거나 닦아준다.


어디서나 깨끗한 동지를 보면 마음이 흐렸다가도 쉬 밝아진다
. 때 묻은 우릴 보면 얼른 수건 들고 달려드는 주인은 복을 듬뿍 받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