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우리 소나무는 ‘한국 소나무’로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3-05-16 11:37:31


황장진 작가

문단데뷔 : 1991. 문학세계수필 신인상

강원수필문학회·청계문학회 고문

수필집 : 가나다 타파하, 청년들이여, 고개를 들라, 참 바보

전자 시집 : 항상 장대하라, 항상 빼어나라, 한우리 연구

 

우리 소나무는 한국 소나무

 

소나무, 눈만 뜨면 정겹게 보인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늘 푸르다 믿음직하다. 복더위고 강추위고 탓하지 않는다. 솔솔바람 품에 안고 쌩쌩 바람 잘도 받아넘긴다. 눈의 무게가 힘들면 가지 하나 뚝 떼어 떨어뜨린다. 밑바탕이 시원찮으면 넘어지기도. 겨울철 산천의 삭막함을 홀로 지킨다. 다른 나무들은 죄다 잎을 우수수 떨어뜨려 앙상하지만 솔만은 갈비 감은 내려놓지만 푸르름은 44철 잃지 않고 의젓하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산소를 주기 위한 헌신봉사다. 수십 년 수백 년 넉넉한 산소 뿜어내기를 쉬지도 않고 꾸준히.

많고 많은 생물들이 이런 고마움을 알고나 있을까?

 

한반도에서는 어디에서나 산을 바라보면 제일 먼저 푸르스레 반기는 나무가 소나무다. 옛날에는 소나무로 지은 토담집 안방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불그레한 소나무 장작으로 데워진 온돌 방 아랫목에서 산모는 탱탱한 젖을 물리며 땀 뻘뻘 흘려가며 몸조리를 했다. 마당 들머리에는 솔가지가 꼽힌 금줄이 새 생명의 탄생을 자랑하며 흔들거렸다. 빨간 고추 까만 숯과 덜렁덜렁 춤을 추며 축하했다. 그 아이가 자라나서 뒷동산 솔숲은 동네 조무래기들이나 바둑이 다람쥐와 어울려서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를 꺾어 먹거나 숨바꼭질하던 놀이터였다. 쭉쭉 자란 도래솔 빙둘러친 널따란 백일홍 묘 둑은 안성맞춤 단골 꼬마들 놀이터.


집으로 돌아올 때는 곁의 산에 기어 올라가 마른가지를 꺾어 내려와서 군불을 지피는 땔감으로 생광스럽게 썼다
. 소나무 숲 아랜 소들이 풀을 뜯어 먹다가 잠시 쉬며 되새김질하는 쉼터다. 목동들이 해 질 녘에는 소나무 지게에다 소나무 작대기를 꽂아 놓고 쇠먹이 꼴을 가득 베었다.


명절 때만 되면 송홧가루 다식을 즐겨 만들어 먹었다
. 큰댁인 우리 집의 할아버지 사랑방엔 소나무가 든 십장생도가 그려진 병풍이 으스댔다. 안방 옷장이나 부엌 찬장 마루 벽에도 소나무가 새겨지거나 그려져 있는 친근한 나무.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는 잘 자란 소나무 아랫배를 갈라서 송진을 뽑기도 그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아픔을 더하고 있다.


한반도의 소나무가 최고의 나무로 자리를 잡은 건 조선왕조 때부터라고
. 조선왕조는 소나무 왕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소나무를 숭상했다. 관청이나 양반집을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무, 배를 만들거나 임금의 널감에도 꼭 썼다.


소나무가 잘 자라는
200여 곳에 봉산을 설치하여 출입을 막을 정도. 소나무가 우리 산의 가장 흔한 나무로 자리 잡은 것은 강인한 생명력과 영리함이 있어서다. 햇빛만 잘 들면 기름지지 않거나 마른 땅을 개의치 않는다. 돌무더기나 바위틈에서도 굳세게 자란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 핀다. 남매끼리의 수정은 형질을 점점 나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영리하다. 그래서 암꽃은 꼭대기에 수꽃은 아래 나뭇가지에 핀다. 꽃가루가 위로 날아 올라갈 일은 거의 없으니 남매 수정은 안 되도록 한 것이다.


암수 꽃피는 때도
1주일 차이를 둔다. 자손이 아예 끊길까 봐 5% 정도는 수꽃이 위로 올라가고 암꽃이 아래로 내려온다. 참 영리하다. 소나무 종류도 여러 가지. 반송은 줄기가 아래부터 여럿으로 갈라지는 것, 춘양목은 해방 직후 영동선 춘양역에서 많이 가져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금강소나무다. 미송은 미국의 대표적인 바늘잎나무로서 소나무와는 과는 같으나 속은 다르다. 금송은 낙우송과의 나무로서 소나무와는 관련이 없다. 해송은 바닷가의 소나무 형제로 원래 이름은 곰솔이다.

 

안타깝게도 자랑스러운 우리 소나무는 외국에선 일본 적송으로 알려져 있다. 소나무 쳐다보기가 참 부끄럽다. 떳떳이 한국 소나무로 고쳐지도록 미루지 말고 산림 당국에서는 어서 나서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