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효자 행운 새 까마귀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3-04-25 12:06:27


황장진 작가

문단데뷔: 1991. 문학세계수필 신인상

강원수필문학회·청계문학회 고문

수필집: 가나다 타파하, 청년들이여, 고개를 들라, 참 바보

전자 시집: 항상 장대하라, 항상 빼어나라, 한우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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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행운 새 까마귀

 

어려서부터 까마귀들의 재롱을 쉬 보며 자랐다. 산골이어서 그런지 까치들보다 참새나 제비들처럼 까마귀가 많았다. 뒤 곁 키가 큰 감나무의 튼실한 가지에도 앞뜰의 사과나무 품속에서도 깍깍까마귀들 지저귀는 소리와 장난치는 모습을 쉬 듣고 볼 수 있었다. 앞산 소나무 숲에서도 이들이 꼬드기는 소리는 조용한 산골짜기를 깨우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까마귀가 맛이 좋고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우리 곁에서 멀어졌다
.


깊은 산속으로 피신을 했나
? 까마귀는 새 가운데 특이하게 늙은 아비 어미를 섬기는 효심이 깊은 새다.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사냥할 힘이 없어진 늙은 아비 어미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반포지효란 말이 생겨난 연유다. 무리 안에서 경험이 많은 나이 든 동료를 섬기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여러 새 중에서 지능지수가 가장 높다. 영장류에 속하는 침팬지와 비슷하다고.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아는 놀라운 지능 수준을 갖추고 있을 정도로 똑똑한 새. 절대로 새대가리가 아니다.


여느 새와는 달리 농부들이 애써 가꿔 놓은 농작물을 조금도 축내지 않는다
. 우리나라에서는 까치를 길조로 여기고 까마귀는 흉조로 여겨 왔다. 까마귀를 보면 괜히 뭔가 안 좋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심지어 재수 없다는 듯 침을 3퉤퉤뱉으며 눈앞에서 멀리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까마귀는 원래 흉조가 아니었다
. 서양에선 행운의 새라 여기고 있다. 우리에겐 국조, 나라 새, 친근한 새로 여겼었다. 역사드라마 <주몽>, <태왕사신기>, <대조영> 등 고구려 사극을 살펴보면 나라 새로 삼족오가 등장한다.세 발 달린 까마귀로 태양신을 의미한다. 천지인(天地人)즉 하늘, , 사람의 3신 사상을 나타낸다. 우리의 시조 환인, 환웅, 단군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삼족오 무늬를 볼 수 있다. 하늘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사자로 여겼다.


견우
·직녀와 관련된 77석 설화에서도 까치와 더불어 은하에 까막까치 다리를 만들어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위상은 나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까마귀에게 왕권을 상징하는
crow라고 한다. 까마귀가 한국에서 흉조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은 중국과 일본 때문이었다.


옛적 고구려를 두려워하던 한족들이 고구려의 상징이었던 삼족오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렸다
. 일본 제국주의가 까마귀는 흉조라는 엉터리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이룬 것으로 알려진 수메르는 환국 이래로 단군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계로 조공을 바치고 사신을 교류했었다고 적혀있다. 그들 사이에선 원래 비둘기가 아닌 까마귀가 평화의 상징이었다.


히브리인들이 까마귀가 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비둘기로 바꿨다고 한다
. 고기를 먹긴 하지만 주로 인간에게 해로운 곤충을 주식으로 삼고 있어 틀림없이 이로운 새다. 국조 삼족오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 사이에서 까마귀는 원래 진귀한 존재였다. 경외의 대상이었다. 머리 좋고, 효심이 지극하고, 신성과 평화의 상징이었던 까마귀다.

 

오늘날에 와서 많은 이들에게 불운을 안겨다 주는 흉측한 새로 알려지게 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 이제부터라도 까마귀를 효자 새’, ‘행운 새’, ‘나라 새로 바로 알고 사랑하자. 비가 그치면, 까만 정장 차림 까마귀들한테 오작교 소식도 들을 겸 산골로 찾아 들어 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