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첫 눈이니 서설[瑞雪]이라 할 것인가. 순백의 세상은 언제 봐도 감동을 준다.
발산초당이 있는 시골은 논,밭이 넓게 펼쳐진 들판이라 흰 화선지로 바뀐 듯 여백이 더 많은 깨끗한 풍경이 되어 딴 세상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시정[詩情]이 온 누리를 누벼 놓은 듯 여겨진다. 눈 내림이 대충 끝나자 다닐 수 있는 통로만 대문 밖까지 최소한으로 쓸어 놨다.
차가 다니는 길들은 동네 안 길까지 금방 제설 작업이 이뤄진다. 초당 울타리 밖이 차 다니는 안 길이어서 쓸면서 나가보니 벌써 치워져 있었다. 길이 좁아 교행은 안 되는 일방통행인데 그래도 대형 트럭까지 다닐 수 있는 폭은 된다. 초당 뒤, 좀 떨어진 곳에 발산이 조금 큰 동산처럼 있고, 앞쪽으로는 조금 멀리 낮은 산들이 포복하 듯 길게 뻗어있어 아늑함을 만든다.
언제부턴가 연말연시 주고받던 연하장이 사라지고, 스마트폰으로 새해 인사와 덕담을 나눈다.
저절로 생긴 변화이다. 어디 연하장 뿐이랴 편지를 육필로 써서 소통하던 것도 없어졌음이다.
폰을 이용해 시시각각 빠르게 소통이 이뤄지는데, 오로지 최소한의 실용성 짧은 문구들만 넘나든다. 손편지를 대신한 것이 전자메일이었으나 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이젠 희소해졌다. 초기엔 그 펀리함에 감탄을 했었다. 우표값 안 들어가고 부치는 수고가 없으며 실시간으로 종이 낭비없이 긴 글도 편리하게 쓸 수 있었다. 특히 글씨가 악필인 사람은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더구나 해외로 보내는 편지는 우체국까지 가야 해서 절차가 참 번거로웠다. 해외로 거는 전화 또한 그랬다. 전화국에 가서 신청하고 기다려서 통화를 했었다. 가정마다 있던 유선 전화도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공공기관들만 공적 용도로 아직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 청년 시절만 해도 산아제한을 국가가 나서서 적극 권장했었다. 아니 강요라 할 것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에 더해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까지 나왔었다.
우리집만 해도 3남3녀 6남매였다. 이 정도가 평균이었을 터이다. 육이오 전쟁 때 하난가 둘을 영양실조와 병으로 잃었기에 그랬다. 정관수술 등 피임을 하면 국가에서 혜택을 주기도 했었다.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아 내 생전에 인구 절벽을 맞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이젠 출산 장려가 국가 시책이 됐다. 나라가 권해도 낳을 생각들을 안 한다. 아기들을 보기란 1년에 손꼽는다.
지방 농촌엔 빈 집들이 늘어난다. 지방 도시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방소멸이란 말이 나온다.
서울과 성남 등 그 가까운 도시만 아직도 미어터지는 중이다. 빈,부를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내 나라도 선진국에 진입했다. 꿈만 같은 일이다.
세상 구석구석 참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래도 적응들을 잘 한다. 놀라울 정도이다. 어리버리 내가 따라가는 게 신통할 지경이다. 가장 뒤쳐져 있을 터이다. 내 작업이 전통을 계승하고 시대에 맞춰 나아가는 길이라 그런 점도 작용을 할 테다. 앞서가고 싶은 건 과욕이겠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화필을 잡은 이래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을 해왔다.
뒤돌아보니 아쉬움이 많다. 미친 듯이 덤벼들어 몰입할 환경이 아니었다. 주어진 현실을 외면 못하는 성향 탓도 있겠다. 내 삶에 안정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능력도 못가졌고 내성적이며 소극적이라 현실을 감당하기 힘겨웠다. 꾸준함과 성실만으로 버텨온 편이다. 중국 장춘에서 시연회,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자대학 대강당에서 시연회는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다. 평생 남 앞에 나서는 일을 극도로 꺼려왔던 성향도 소용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잘 해냈으니 대견하달까.
계묘년 새해에는 또 어떤 일들로 채워질 것인가. 계획된 건 남옥선생 매화시를 화폭에 담아 전시회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관여하고 있는 각종 단체전에 출품을 할 터이다. 노숙함은 바라지 않고 완숙의 단계로 가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 것인가. 아직은 멀고도 먼 도정으로 보인다. 어쩌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