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정중동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12-20 11:52:38


 

12월도 중순을 넘겼다. 어제 16일엔 한파와 폭설주의보가 내려지며 눈이 내렸다. 이번 겨울 들어 제대로 온 눈이었다. 몇 차례 눈, 비가 내렸지만 별로 위협적이진 않았다. 이번엔 온 누리가 순백의 세상으로 바뀔 만큼 재대로 왔는데 발목도 안 찰 정도이니 폭설까지는 아니었고 제법 강한 바람까지 휘저었다.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만 마당에서 대문 밖 길까지 빗질을 해놨다. 겨울다운 낮은 기온의 연속인 날들이 이어진다. 몇 차례 사람들이 찾아왔고 한번 편의점에 다녀왔다. 화실에도 서너 번 갔었다. 14일엔 모처럼 시내 나가 춘천미술관과 문화예술회관도 들렸었다. 그외에는 대문 밖에도 안 나가는 칩거가 이어진다. 그야말로 정중동이라 할 것인가. 발산초당도 본격적으로 보일러를 가동, 집안에 온기가 잘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11월엔 난방을 거의 안하고 한기를 참으며 견뎌냈었다.

 

 

지난 6일 오후엔 전화를 하고 황곡이 후배와 함께 화실에 들렸다. 얼마 전에 감정을 부탁하며 보여준 조옹도[釣翁圖]’ 족자를 들고 왔다. 전지에서 세로 폭이 약간 좁은 크기, 노인이 낚시대를 어깨에 메고 거기 위쪽엔 호롱박이 매달려 있고 다른 손엔 싱싱한 잉어인지 쏘가리인지를 한 마리 갈대에 꽂아 들고 반할 만큼 미소보다는 약간 더 웃는 표정의 묘사가 섬세하고 나머지 짚으로 만들어 어께에 두른 비옷과 의복이나 배경의 나무며 일필휘지로 활달한 필치가 잘 어우러진 그림인데 중국 화풍이다. 얼굴과 손발, 호롱박만 엷은 담채가 설해지고 모두 수묵<水墨>이다. 화제와 낙관이 있지만 작가가 누군지 파악이 아직은 안 된다. 그림이 좋다는 평을 기억했다가 몇 곳을 건너서 내게로 온 것이나 칭찬만 했을 뿐 소유하고 싶다든가 어떤 유사한 발언도 없었는데 가져와 내 작품 한 점과 바꾸게 됐다. 며칠 말아뒀다.


달샘한테 보여주니 초당의 차방에 걸면 좋겠단다
. 들고 와 걸어보니 어쩜 안성맞춤처럼 잘 어울린다.

 

8일엔 소장품전을 잘 끝낸 강일언론인회 이회장과 최이사, 석주, 현곡시인이 함께 전화를 하고 초당으로 와 화실에 들렸다가 동네 식당 토속촌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전시회는 많이 왔고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개막식 전 날 나가서 이회장한테 전시 작품들을 한 점 한 점 내가 아는 한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고 그걸 토대로 관람객들에게 전달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 내년이나 후년에도 계속 이어가고 싶어 했다.


전국 언론계에 강일언론인회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었다
. 식후 현곡시거도 방문했다. 이런 기회는 처음이지 싶다. 모두 흡족해 했다. 생활 속에 서려있는 문화의 향기를 음미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계획을 세운 스케줄이 아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보였음에도 만족도는 높았다. 현곡시거에서 당호<堂號> 이야기를 또 하게 됐다. 춘천의 문인들은 왜 그런지 서재명이나 당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건 시대를 불문하고 계승해도 좋은 문화 전통이지 않은가. 아호<雅號>도 그렇다.

 

11일엔 재작년 문화원 한국화반의 일원으로 화실에 와 한국화를 배우던 삼십 대 초반 젊은이가 연락을 하고 초당으로 찾아왔다. 처음엔 전화에 찍힌 이름만으로는 누구지 하며 떠오르지 않다가 겨우 기억해 냈다.


한 학기도 충실히 다니지 않았기에 기억이 안 났었다
. 성격이 섬세하고 생각이 많은 젊은이다. 이야기가 길어져 초당에서 아예 저녁을 같이 먹고 더 이어지다 아예 자고가면 안 되냐기에 초당은 환경이 마땅히 않아 밤 11시 경 화실로 올라가 이야기 나누다 먼저 자게 하고 백매도 한 폭을 서간지에 쳤다. 화실이 초당보다 더 따듯하다. 바닥은 전체가 전기판넬이다. 새벽 5시까지 작업하다 자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일어나보니 아침에 나갔단다. 하도 곤하게 자니 나를 못 깨우겠더란다. 전화해 힘들면 언제든 오라고 했다. 14일엔 달샘이 와서 춘천미술관에서 마지막 날인 강원예총 60주년, 강원미술 100년의 봄전을 볼 수 있었다. 도내 원로, 중진, 청년작가를 합해 60명을 선정해 하는 전시다. 나는 원로작가에 속한다. 공식적으론 처음 경험이 된다. ‘원로가 생소하기만 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강릉에서 강원현대한국화회전이 있었다. 지난 가을부터 각종 전시회마다 내는 작품은 모두 남옥선생의 매화시를 화제로 넣은 매화도 연작들이다. 홍매도 있고 백매도 냈다. 일본 방부시에서 있을 교류전에도 백매화를 출품한다. 지난 가을 예우회전에 냈던 작품이다. 외출한 김에 춘천문화원에도 들려 사무국장을 만났다. 문화원에서 중점사업으로 출간하는 동지[洞誌] 신북읍편이 나온줄 알았는데 아직이란다. 내 작품으로 표지와 속표지화를 삼기에 궁금했었다. 20일부터 발송한다는 말을 전해 듣긴 했었다. 문화원에 전해준 서간지 소품 백매도 20점을 표구해 비공식 짧은 전시를 하면 어떤가 하는 의견을 사무국장한테 전했다. 과연 해낼지는 모르겠다. 일단 내 제안을 긍정하기는 했다. 원장인 장곡형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 원장님은 퇴근해 못 봤다. 50년 화필 생애에 소품이지만 20점을 보름간 집중해 정성들여 작품해본 경험은 처음이다. 마침 문화원에 전시장이 있으니 하루든 이틀이든 전시해 직원 모두가 보고 기념사진이라도 남겼으면 싶다.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