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비행기 안에서

지소현 승인 2022-11-22 11:22:27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상대를 지나치게 띄워 줄 때 비행기 태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비행기 타는 사람이 선택적이던 시절, 비행기에 대한 선망이 담긴 것이다.


사람을 싣고 하늘을 나는 물체
,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품이 아닌지.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탈 수 있으니 복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그 넘치는 복을 나도 많이 누렸다. 하늘에서만 보낸 시간을 계산하면 아마도 한 달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 비행기를 탄 것은 일본행이었다
. 해외여행의 붐이 일던 20여 년 전이었다. 가까운 문우들끼리 일본 교토로 작품여행을 갔었다. 그때 보고 들은 귀 무덤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사살하고, 목 대신 귀와 코만 가져다 묻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코 무덤이었는데 야만적이라고 귀 무덤으로 바꾸었다 하니 더욱 울분이 일었다. 조선인 126,000명 분의 코가 묻혀 있다는 곳, 아마도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속담에 이때 생겨났는가 보다. 인생의 첫 비행은 치욕적인 역사 현장 목격이었다.


다음은 라오스였다
. 가난한 나라 장애 여성들에게 휠체어를 선물하러 간 것이었다. 그곳에는 60년대 우리 모습이 있었다. 장애 여성들이 목발 대신 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있었다. 비장애인 위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이라서, 남성 우월 문화에서 여성이라서 겪는 아픔의 현장이었다. 그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다를 것이 없는 비극 앞에서 얼마나 울고 싶었던가. 그 후 나는 10여 년이 넘도록 가난한 나라를 장애 여성들 나눔에 동참했었다. 베트남, 미얀마, 중국,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케냐 등등


특히 라오스
, 베트남 등에서는 우리나라 대사관 부부가 관저에 초대해 격려를 해주기도 했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하나가 되고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미국 뉴욕의 유엔사무국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권리협약국가 회의 참관인으로 갔었는데 반기문 사무총장 재임 때였다. 우리나라 오준 대사가 조직의 의장이었고 극진한 대접을 해주었다. 마침 반기문 사무총장의 생신 파티가 있었는데 초대를 받기도 했었다.


대한민국의 가난한 장애인인 내가 나보다 더 못한 지구촌을 누비며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었던 추억
! 높아진 국가의 위상과 함께 언제든지 하늘을 날 수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느 해인가는 사회복지인 국제교류 일원으로 호주에도 갔었다
.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노인 시설을 돌아보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지구촌 어디서나 짐승의 죽음과 사람의 죽음이 다른 이유를 말이다. 돌아보면 나의 비행 목적은 언제나 아픔을 찾아 나선 항로였다. 고대 유적지를 카메라에 담고 이국적인 화려함을 즐기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의 지혜로 인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하늘을 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폭발하면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험을 헤치며 시간과 공간을 떠가고 있을 것이다. 기체의 안전성과 조종사를 믿고 편안히 잠을 자고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다. 내 인생도 비행기 안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절대 주권자를 믿고 의지할 때 주어진 항로를 두려움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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