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형제도 미워하는 가난이거늘

지소현 승인 2022-08-17 11:24:20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복지국가의 우수성 지표는 장애인복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대표적 소외계층이니까.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 기능 제한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삶의 유지가 어렵다. 자신의 잘못이거나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생존경쟁에 열등한 지위에 놓인다는 것은 억울하고 슬픈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애인은 가난의 대명사이며 차별의 표상이다. 의식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장애인도 존엄함 인간임을 인정하는 제도나 사회적 분위기를 가진다. 우리나라는 80년대, 88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 이후 급격하게 인식이 개선되었다.


70
년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거리에서 동냥하는 장애인을 만난 기억이 있다. 아직도 가슴을 울리는 장면은 시장 근처에의 양다리가 없는 장애인이다. 하체를 온통 고무장화 같은 재질로 감싸고 엎드려 이동했다. 동전 몇 닢이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 옆에는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휴대용 녹음기도 있었다.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가사! 그래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성서 속 예수님은 선천적 앉은뱅이
, 중풍 병자,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 혈루병자, 문둥병자, 귀신들린 정신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셨다. 가장 은혜를 베풀며 사랑한 이들은 가난한 장애인들이 아니었나 싶다동네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부모 형제에게도 짐이 되었던 이들. 인간과 짐승 중간 지점 제3의 인종쯤으로 치부되었다. 차별과 편견이라는 고급 용어로 표현을 하지만 내포된 세상만사는 차마 입으로 옮기지 못할 비극으로 얼룩져 있다.

 

나 어린 시절에는 물건을 팔러 다니는 상이군인들이 있었다. 비누, 연필 등등 가벼운 것들을 지니고 집집마다 들어섰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목발로 후려칠 자세로 무서운 눈을 부라리던 분들, 6.25 전쟁에서 팔다리를 잃었으나 신생독립국가인 가난한 대한민국이 책임질 여력이 없었다. 홀로 감당하는 불행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그 상처의 자리에서 불과
70여 년 만에 풍요한 국가 반열에 들어섰다. 중장년 세대는 가난을 물리친 기적을 체험한 증인이다.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역사를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원동력이 남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민족성이 아닌가 한다
. 서양 속담에 가난은 형제도 미워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가난한 형제를 미워한 이웃들이 없다. 콩 한 쪽도 나눠 먹고 맏형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당연히 동생들을 돌보았다. “맏이는 부모 대신이라는 말도 있었다.


러나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자 변해버린 민족성을 가끔 느낀다
. 부모의 상 중에도 재산 다툼을 하고, 부자인 형제가 가난한 형제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의 절박함을 이용해 노동력 착취를 한다. 장애인들은 가족의 돌봄을 기대할 수 없어졌다. 그 대신 국가에서 책임지는 제도적 울타리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권리가 천명되었다. 형제도 미워하는 가난이거늘, 미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전개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70살 중반의 여성장애인 이야기다. 그녀는 등이 굽고 작은 키를 가졌다.


비장애 형제들의 결혼에 걸림돌이 된다는 암묵적인 질타
(?)를 받았다. 20대 때 언니가 형부감을 데리고 오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그녀를 장롱 속에 숨어있으라고 했다. 그 비인간적인 지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캄캄한 장롱 속에서 들은 웃음소리, 맛있는 음식 냄새...


그때의 소외된 설움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했다
.


그 응어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픈 욕망이 되었고 기회가 되자 자립했다
.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는 삶이 만족한다고 했다. 그녀가 그린 미래는 구걸을 하거나 형제들 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는 자신의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리는 형제들과는 왕래가 끊겼어도 가끔 복지관 문화 여가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 외롭지 않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장애를 인간의 다양한 존재 양식 중 하나라고 했다. 명실상부 선진국인 우리나라다. 가끔은 자신의 삶을 만족해하는 장애인들이 있어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형제도 미워하는 가난이기에, 기왕이면 장애인을 먼저 살피는 지도자들이 즐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