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허상과 실상

지소현 승인 2022-08-09 11:46:29


지소현 본지 대표, 수필가

 

검은 밤, 유리창 바깥에는 실내 풍경 허상이 맺힌다. 그것은 때때로 실제처럼 착각될 때도 있다. 만일 잡으려고 창문 열고 발을 순간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된다. 우리네 인생도 허상이 지배할 때가 많다. 곳곳에서 속았다고 아우성치고 원망한다. 인간이 주는 허상은 판단의 오류다. 나는 정치인들의 허상에 다친 적도 있었고 다치는 집단들도 보았다,


그들은 평소에는 관심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친절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 지나가는 강아지에게도 말을 걸 정도로 자상하다. 순진하던 시절, 어느 한 사람의 친절을 굴뚝같이 믿은 적이 있다. 좋은 사람이라고 소문도 냈다. 그런데 그가 정계에 입문하자 사나운 대형견으로 돌변해 나를 공격했다.


장애여성 전문프로그램을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던
2014년 말미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매칭 예산으로 진행하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시에서 2015년도 매칭 금을 책정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책적으로 이슈화된 장애여성사업을 몰살하는 처사가 어이없고 종사자 급여가 포함된 예산이라 더욱 난감했다. 졸지에 실업자가 생겨나고, 정기적으로 제공하던 프로그램이 중단될 위기를 맞았다.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어처구니가 없었다. 의회 심의 과정에서 문제의 그가 반대했다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어찌 이럴 수가.


이곳저곳에 줄을 대서 사업의 타당성을 설명하며 탈진할 것만 같은 나날을 보냈다
. 그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유치찬란한 흠결 내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기관이 거래한 주유소에서 내가 개인차에 기름을 넣었는가를 캐고, 프로그램 강사의 이력을 캐고, 후원금 관련 장부를 뒤졌다. 드러날 것이 없을수록 마음에는 분노가 차올랐다.


누군가가 말해 주었다
.


집에서 밥 한 끼라도 먹여 보낸 사람이 발뒤꿈치를 무는 법이야내부 누군가의 협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무대응 자세로 전환했다. 감이 잡히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 의읜 입성 시 정당을 바꾸어서 공천을 받았다. 그런데 옮겨간 정당에는 과거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모 의원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 내가 주최한 행사장에서다. 모 의원이 반대쪽 정당 여성 내빈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현장을 목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난 후 당파 싸움으로 번졌다. 문제의 여성이 속한 정당에서 나를 부추겼다.


불손한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킴은 행사의 취지를 경히 여기는 처사 아닌가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나는 앞장서서 규탄했고 모 의원은 맡고 있던 자리에서 내려왔다. 남을 물고 뜯는 일이 칭찬하는 일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체험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그가 모 의원이 있는 정당으로 옮겨간 것이다
. 그는 그곳에서 기득권세력에게 공로를 세우고 인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동의 적인 나를 공격하는 일에 앞장섰으리라. 인과응보라는 말을 떠올리며 잠잠하게 회개의 기도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 추경에서 예산이 회복 되었다. 장애인단체라는 사회적 약자집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나도 점차 약아져서 지도자가 연출하는 이미자라는 허상에 발을 내딛지 않게 되었다.


허상은 실상이 투영된 그림자다
. 그럴싸한 분위기와 조명이 필요한 직군의 무리일수록 시의 적절한 연출을 한다. 그림자의 각도, 조명의 크기, 위치, 물건의 배치...


지도자를 세우는 인류 역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 속임수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게 울고 웃고 당하고 다치고 사망하면서 역사를 만들어 가리라. 철이 들어버린 지금, 허상과 실상의 간극이 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