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얼굴은 마음의 거울인가?

지소현 승인 2021-04-13 11:15:17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불후의 명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예수가 팔려가기 전 열두 명의 제자와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작품은 성서적 가치도 있지만 얽힌 일화가 교훈을 준다. 사람의 두 얼굴에 관한 것이다.


다빈치가
7년에 거쳐 그림을 완성할 때였다. 예수의 모델을 고심하며 찾던 중 온유하고 후덕한 얼굴의 청년을 만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망설임 없이 그를 모델로 삼았다. 그 후 6년 동안 열한 제자를 차례로 완성했고 최종적으로 배신자 유다만 남았다. 감옥에서 흉악범 중 유다의 얼굴을 물색했고 드디어 한 죄수를 찾아내 그림을 완성했다. 그런데 유다의 모델을 했던 죄수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제가 6년 전에 예수님 모델을 했던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욕심에 찌들고 방탕에 젖다 보니 예전 모습은 간 곳 없고 행악자 얼굴이 되었다는 것이다. 삶의 방식에 따라 얼굴이 몰라보게 변할 수 있다니! 얼마나 충격적인가. 그래서 동양철학의 관상과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인상이 신빙성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믿음이 엇나간 적이 있다
.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희대의 살인범 유영철의 선량해 보이는 얼굴을 보고 나서다. 그저 평범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흉악범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인상! 그는 사이코패스라는 인격장애를 가졌다고 했다. 감정을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이 부족해 상대방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사이코패스!


극도로 이기적이며 충동적이고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 만일 자신의 거짓말이 코앞에서 드러날지라도 태연하게 다른 거짓말로 대치한다고 한다. 그러한 속임수의 대가인 사이코패스는 모두가 흉학범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서 능숙히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이나 남을 폐인이 되게 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전두엽 장애인들. 경쟁 치열한 세태 속에서 잘 살펴볼 일이다.


문득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 앞차 꼬리를 물고 가다가 갑자기 신호등이 바뀌는 바람에 횡단보도 중간에서 급정거를 해버렸다. 이내 파란불이 켜지자 사람들은 내 차를 비켜 길을 건너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부끄러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거친 남자의 욕설이 들렸다. ‘올 것이 왔구나.’ 못 들은 척 앞만 주시하고 있다가 길을 다 건너 인도를 걸어가는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 남자도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있던 얄미운 운전자가 궁금해서인지 걸음을 늦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귀한 신분의 어르신이 아닌가. 그 어르신도 나를 알아보았는지 재빨리 눈길을 돌렸다. 저절로 쓴웃음이 피어났다.


그분이 나를 규칙도 지키지 않는 파렴치한으로 여길 것 같아 쫓아가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 다음에 만나면 오늘 일을 모르는 체 태연히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번져가는 수치감 속으로 그분의 지나치리만큼 강력한 욕설이 불쑥 떠올랐다. 품격 있고 점잖아 보이던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거친 얼굴이라니! 환상이 깨지면서 그동안 내가 속아온 것이 아닐까 혼란도 일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잠시나마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 내 잘못이 더 크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평소 근엄해 보이던, 내가 존경해 오던 그분의 얼굴은 오랜 세월 작은 원칙도 어기는 걸 싫어한 성품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분의 욕설에 인격을 의심한 일이 죄송스러웠다.


이쯤에서 두 얼굴에 대해 정리해 본다
. 정반대의 얼굴로 변한 최후의 만찬 모델은 욕망의 제어장치가 고장 난 후천적 인격장애다. 그리고 보호색을 띠고 곳곳에 잠복해 있다가 사냥감을 거침없이 낚아채는 시이코패스는 선천적 기형이다. 본의 아닌 실수를 한 나와, 원칙에 어긋난 것을 보면 여과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그분은 어떤 형 인간일까? 상황에 따라 늘어났다가 곧 제자리로 돌아오는 탄성형 인간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성찰을 거쳐 속과 겉이 비슷하며 사람들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 기왕이면 단아한 얼굴로 늙어 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실수라도 경계하면서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해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