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여성의 발과 여권(女權)의 변화

지소현 승인 2021-04-06 11:29:07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하이힐은 유행이 지나 신지 않는다는 한 여성의 글을 보았다. 예쁜 하이힐을 신기 위해 발뼈를 깎는다는 10여 년 전 기사와 함께 형형색색의 하이힐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새의 부리처럼 뾰족하고 버들 잎새같이 좁은 하이힐은 신발이라기보다 장식품처럼 보였었다. 더구나 굽이 10센티에 달하는 것도 있어 그것을 신고 걷는 모습은 마치 묘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한 신발이 이제는 한물갔다니 여성의 왕성한 활동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돌아보면 먼 옛적부터 여성의 발은 여성성의 마무리였다. 코끝 날렵한 버선, 꽃고무신은 작을수록 여성스러웠다. 작은 발과 작은 신발에 대한 로망은 중국의 전족에서 극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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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무렵부터 20세기 초반까지, 1,000여 년간 이어졌다는 그 역사에는 지어낸 것 같은 전설들이 있다. 오나라 황제 이욱이 황금과 보석으로 큰 연꽃을 만들면 후궁 요랑이 비단으로 발을 졸라매고 그 안에서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 양귀비와 비연의 발은 3촌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촌이 약 3센티니까 3촌이라면 약 9센티 남짓한 크기다. 상상해 보면 얼마나 기괴한가. 생기다 만 것처럼, 기형적 발을 가진 여인들이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최고의 미인이라니 더욱 해괴하다.


작은 발을 만들기 위한 과정도 잔인무도하기 비할 바가 없는 엽기적 행위였다
. 딸아이가 5~6세에 이르면 비단 천으로 발을 동여매 성장을 강제로 막았다.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네 개의 발가락을 발바닥에 구부려 붙이고 바깥쪽 발뼈를 졸라매면서 발등까지 활처럼 구부려 묶었다니 화분의 분재가 떠오르지 않는가. 살이 문드러지고 뼈가 휘는 고통에 신음과 눈물이 그치지 않았을 여자아이들! 합병증까지 발생했지만 부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그만 발 만들기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여자로서 당연한 과정이라고 달래면서 말이다. 이같이 잔인한 전족은 궁중 여인들과 상류층에서 시작해 점차 평민들에게까지 퍼졌다고 한다. 그리고 혼인기에 이르면 작은 발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권문세도가의 짝이 되어 신분 상승을 하거나 남자의 예속물로 자리를 굳히면 성공이었던 여상의 삶! 기형의 발로 걷기도 어려워 가마를 이용하거나 지팡이를 사용했으며 가사나 노동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권세가들은 조그맣게 고쳐 만든 여성의 발에 금련
, 춘순, 서연이라는 이름을 붙여 냄새까지 즐기고, 그들의 신발을 궁혜라고 부르며 술잔으로 삼기도 했다고 하니 지금 시대라면 정신병원 치료대상이 아닌가. 이러한 여성의 발에 가한 잔혹한 기록은 비단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 어느 나라인가는 여성이 외출을 할 때는 신발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먼 거리를 못 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의 발에 가해진 남성 위주 사회의 흔적
! 그 철옹성을 허물려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앞장서서 절규했던가. 마치 독립운동가처럼 여성 운동가라는 이름까지 붙여졌으니 말이다. 그 역사를 일일이 들춰내면 한정 없음에 전족만큼 피눈물 어린 과정이었다고 함축해 말할 수 있다. 이런저런 세월이 흘러 여류작가, 여류화가, 여류 음악가... 각종 전문직 앞에 여류라는 수식어가 사라졌다. 호주제까지 폐지되었고 지금은 아들보다 딸이 더 좋다는 부모들이 넘쳐난다. 여성의 마당발이 미덥고 운동화 신은 발이 아름다운 세상! 저마다 어울리는 모양과 편한 신발을 신고 달려갈 수 있는 변화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