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김유정 초상을 그리며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04-06 11:27:53


 

▲ 우안 최영식 화백.
 

목불 장운상 화백의 미인도를 모사했고, 김유정 소설 봄봄에 나오는 점순이는 박수근 화백의 아기업은 소녀를 차용해 배경에 바위와 산동백 꽃 핀 숲을 넣어서 나름 만족스럽게 끝냈다. 마지막 작업이 김유정 초상을 그리는 일이다. 자료를 받은 것이 얼굴 중심인 콧대를 좌,우로 밝고 어둠의 명암대비가 극명한 모습의 사진이다. 한복을 입었고 김유정 행사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대표 사진이기도 하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심적 부담이 커서 뒤로 미뤄왔었다
. 포기하지 않는 한 해내야 한다. 심사숙고를 거듭하다가 용기를 냈다. 화필생애에 가장 큰 난제를 만났다.

 

일차 작업을 해놓고 지인 두 명에게 보여주니 김유정 모습이 나왔단다. 몇 번의 연습에도 영 아니었는데 이번엔 닮았다니 기운이 났다. 어색한 부분이 있는 걸 신중하게 부분, 부분 교정하며 점차 나아져 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한국화도 서양화도 아닌 애매한 방식이다. 먹을 뼈대로 쓴다는 점만 세 점의 공통점이 된다.


한국화에 입문한 후로는 장난으로도 초상화나 인물화를 그려 본 적이 없었다
. 몇 년 전 의암 유인석선생 집안 독립운동가를 후손의 사진을 참작해 소품으로 의뢰받아 해본 게 유일했다. 그때도 얼마나 난감했었는지 모른다. 이번엔 그보다 더 하다.

 

적당히 두툼한 자작나무 판에다 채색은 한국화 채색과 포스터칼라를 혼용하여 사용한다. 선과 배경엔 먹을 이용하고 있다. 한국화가이기에 먹의 훌륭함을 잘 알아서다.


먹은 비석을 못 세우는 형편이면 사발에 망자의 이름과 생년과 몰년을 적어 재를 채워 땅에 묻으면 오랜 세월이 지나도 글씨를 알아볼 수 있다
. 입춘방을 기둥에 붙여 놓으면 햇볕에 백년동안 노출돼도 종이는 삭아서 없지만 글씨는 그대로 남는다. 이런 재료가 먹 말고 또 있을 것인가. 화선지에 먹과 담채를 주로 쓰던 처지에서는 모든 게 생소하다.


개인이 소장하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보게 되는 산책로에 부착된다
. 부담감이 커진다.

 

어차피 화가란 닥치면 뭐든지 그려야 한다. 그게 숙명이다. 새삼스럽게 재인식하며 그려가고 있다. 김유정과의 인연이 더 깊어지는 확인을 해간다. 김유정 문학촌에 기념 전시관 현판과 기념사업회 글씨, 생가 안방에 겸허 글씨, 대청마루에 걸린 글씨, 이야기집 현판글씨, 김유정우체국 글씨까지 내 흔적이 적지 않다. 문학촌 낭만누리 전시실에서 산동백꽃을 소재로 문인화전도 가졌었다. 김유정 문학에 매료되었기에 자청한 게 많다.


도처에 산동백이 핀걸 보게 된다
. 올 봄은 꽃피는 순서가 없이 다투듯 핀다. 진달래도 한창이니까. 매화도 이제야 피어나는 중이다. 목련도 핀게 구름덩이 같다. 기온은 변화가 극심했음에도 꽃들은 영향을 안받은 듯 싶다. 비바람도 거칠었다. 내 작업도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