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연인(戀人)과 애인(愛人)의 비교분석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1-03-23 10:55:42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한 번은 사랑하는 이성을 만난다. 일컬어 연인이라고도 하고 애인이라고도 하는 인연... 사랑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수시로 해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시대를 살면서 나름대로 연인과 애인에 대해 분석해 본다.


우선 연인
(戀人)이라는 말에서는 새하얀 눈 냄새가 난다. 겨울날 언 땅의 솜이불이 되어 잠든 씨앗을 품고 소망의 냄새를 흩뿌리는 눈! 연인도 누군가의 가슴에 꿈을 그리는 순백의 존재다. 사전적 의미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 또는 이성으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성 간에 느껴지는 감정에만 국한 짓기엔 뭔가 아쉽다. 만인의 연인이 있고 남녀 간의 연인도 있기 때문이다.


만인의 연인은 불특정 다수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맨이나 연예인
, 또는 사회 지도자들이다. 운동장을 누비는 스포츠 스타의 땀, 가수의 절절한 노래, 해맑은 미소의 연기자, 귀감이 되는 지도자의 언행, 그들을 보면서 설레는 감정은 성별이 구별되지 않는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남녀노소 없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다. 그래서 인간사의 자양분 같은 존재다, 자양분은 본질이 썩지 않고는 생성되지 않는다. 우리는 만인의 연인들이 남몰래 견딘 절대고독과 참아낸 눈물을 안다. 그 인고의 시간이 발효되어 만인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에너지가 된 것도 안다.


남녀 간의 연인도 마찬가지다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에게 그리움에 된다는 것은 창조적 힘의 근원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결이 뿜어내는 에너지다. 그래서 설렘의 흔적이 절절하고 복잡 미묘할수록, 뼈가 삭은 듯이 기형이 될수록 아름답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설렘이 사라져도 미움과 원망으로 얼룩지지 않는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도 있고 남녀 사이로 제한될 수도 있는 연인이란 말은 꿈을 주는 인간관계가 아닌지.

 

애인이란 말에서는 탱글탱글한 밀감 냄새가 난다. 낯선 이성을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시고 떫고 달고 톡 쏘는,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해야 가능한 일이다. 톡 쏘는 상큼한 만남이 달게 익어가는 동안 신맛의 갈등도 있고 떫은 이별로 끝나기도 한다. 모든 맛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애인인 구체적인 관계다. 그리고 신뢰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내 애인이 다른 이성에게 눈길만 주어도 본능적으로 싸울 준비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시로 신뢰 전선(?)의 이상 유무를 점검한다. 어쩌다 전화라도 받지 않으면 궁금해지고 의심까지 생긴다. 가끔은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칭찬받아야 안심이 된다. 사사로운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도 서운하고 이벤트가 없어도 사랑이 식은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끊임없이 관심을 바라다보니 행여 손해 볼까 봐 탐색용 밀고 당기기 작전도 구사한다
. 이리저리 리듬에 맞추어 스텝을 밟듯이 둘의 관계는 끌려가고 끌려오고 빙빙 돌아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관계! 때문에 스텝이 얽히면 어느 한 편이 넘어져 상처를 입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니 오래도록 아름다운 춤을 추려면 화합과 기술과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이 기울면 영원한 막이 내려지니까. 만일 이별을 하면 함께 보낸 시간들을 잠 못 들고 추억하며 잘못을 상대방에게서 찾는다. 자기합리화라는 자생적 묘약이 생겨나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묘약으로 아문 상처엔 굳은살이 생기고 그곳에 다른 사랑의 씨앗이 움트자면 시간이 걸린다.


이렇듯 다양한 감정의 리듬 안에서 서로 길들면 대부분 영원한 동반자로 결론이 나는 애인
! 붉은 꽃같이 선연하고 열매처럼 생산적인 관계다. 그래서 애인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소유격 관계다.

 

인간사의 필수 요건인 연인과 애인을 비교해 보니 꿈을 품은 순백의 연인도 좋고 열매 맺는 오묘한 맛의 애인도 좋다. 하지만 나에게 굳이 선택하라면 나는 누군가의 연인이 되고 싶다. 남아 있는 삶이 타인에게 설렘이 되고 꿈이 된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나만의 고통을 승화하는 자세와 넉넉한 마음을 기르는데 열정을 내야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