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견공(犬公)을 통해 보는 세상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1-03-16 10:34:16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지난해
8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반려동물 인구가 약 1,500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이는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셈이며,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반려동물 항목이 추가됐다고 한다. 즉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반려동물을 위한 각종 정책과 서비스 시장이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아니한가.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아야만 행복을 느끼는 인간의 특성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특히 개는 오래전부터 애지중지(愛之重之)해 온 동물이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평창 60년대 산골엔 집집마다 개가 있었다. 사람의 식량도 부족했던 때인지라 인분을 먹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골목길이나 논두렁 밭두렁을 돌아다니다 인분(人糞)을 발견하면 먹어 치우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 신세대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얘기지만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그리고 배회하는 개들이 주워 먹을 정도로 인분이 집 밖에 널려있다는 것도 믿기지 않을 것이다. 조무래기들은 들로 산으로 쏘다니다가 변의를 느끼면 적당한 곳에서 배설을 했고, 어른들은 논과 밭에서 일하다가 은밀한 장소를 찾아 생리적 문제를 해결했었다. 나도 풀숲이나 논두렁 밭두렁에는 인분人糞인지 견분犬糞인지 정체불명의 변들을 많이 보았었다.


인분을 식량 삼는 개로 인한 비극적 이야기도 있다
. 윗마을 홀아비 김씨가 젖먹이였을 때라고 한다. 어머니가 재워놓고 들에 나간 사이 깨어나 혼자서 변을 보았다. 그 때 그 집 강아지가 변을 먹으려고 사타구니를 핥다가 고추를 깨물어서 평생 불행해졌다고 했다. 마치 조선 시대 호랑이에게 물려간 아이들처럼 개에게 가장 귀중한 부분을 빼앗긴 사내아이의 이야기, 전설처럼 슬프지 않은가.


가난한 시절 개들은 안주인이 아침저녁 뜨물 통 찌꺼기를 걸러서 개밥그릇에 부어 주는 것이 먹이의 전부였을 뿐
, 점심을 주지 않았다. 간혹 넉넉한 주인이 개에게 점심을 주면 살림이 헤프다고 흉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조상들은 해 저문 후 서쪽 하늘에 가장 먼저 반짝이는 금성을 개밥바라기라고 불렀다. 허기진 개가 별을 쳐다보며 짖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그러한 개가 자라면 어김없이 개장수를 불러 팔아넘겼다. 험상궂은 개장수에게 질질 끌려가며 몸부림치던 60년대 수많은 워리, 메리, 베스, 쫑들... 이름까지 빈곤함 속에서 부자나라를 흠모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가.


안주인들은 개를 판 돈은 그릇을 사야만 좋다면서 양은 밥솥
, 양은 양푼들을 장만했었다. 농경시대 가부장 제도하에 여인네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유일한 수입이어서 생겨난 말이리라.


사람들의 변을 먹고 충성하다가 급기야 안주인의 살림 장만을 위해 목숨까지 내주던 내 유년기의 개들
! 영양가 풍부한 사료는 물론이고, 앙증맞은 옷을 입고 개 껌, 개 간식을 즐기는 시대에 당도해 돌아보니 가슴 아리다. 그리고 사람인지 개인지 분간 안 가는 이름을 달고 주인과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는 지금의 개들이야말로 만물의 영장 다음 서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한다. 동급(?)으로 인정하는 반려라는 단어까지 붙여졌으니 말이다.


이는 모두가 경제성장 덕분이다
. 풍요로워질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에 지치고 팽배한 이기주의 탓에 인간은 외롭다. 그래서 정서적 만족을 얻으려고 개와 사는 것이다. 복종 교육을 통해 충성심을 확인받고 교감을 나누며 의지할 수 있는 대상! 배고프던 시절의 개들을 지나 마음 고픈 시대의 개들!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다. 머지않아 인공지능(AI)이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할 것이라고 한다. 그날이 오면 반려견 수는 더욱 늘어나 총가구의 절반이 넘지 않을까? 편리함 넘어있는 인간소외 환경은 사랑이라는 원초적 감정을 필요로 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