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내 노후를 위한 멤버의 재구성

지소현 승인 2021-03-09 11:00:51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내년
61일이면 제8회 지방 선거가 돌아온다. 나는 선거철만 되면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발동해 왔다. 항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출마해 지지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끈끈함으로 묶여있는 고향 사람, 평소 장애인복지 정책에 열정적으로 동참한 사람, 정기적으로 만나 즐거움을 나누는 친목 회원... 한 명이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두 명 이상일 때는 난처하다. 모두가 소중한데 한 사람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마치 어린 시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질문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다. 더 나아가 잘못하면 곤경에 처하거나 아예 멀어지는 아픔까지 감내해야 하는 선거철 인간관계!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 평소 친밀하던 이라는 인물과 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런데 둘이 같은 정당 예비후보군단에 이름을 올리고 각자 내가 자기를 지지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는 자질을 기준으로 을 마음속에 정해 놓고 있어서 에게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내 맘에 두었던 이 서운하다고 공격을 해온다. 이유는 내가 을 절대적으로 도와주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다. 황당하지만 가슴을 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열심히 하세요, 적임자니까.’원론적으로 마무리한다. 그런데 더 큰 날벼락은 다음에 일어난다. 이번에는 이 섭섭하다고 펄펄 뛴다. 갑자기 둘 사이에 끼여 전전긍긍하는 내 입장이 짜증스럽고 가여워지려고 한다.


그래서 정치판으로 나설 것 같은 사람들과는 애당초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내 직장이 제도적인 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머릿속 계산기를 작동하면서 참다운 인간관계란 어떤 것일까 자문해 본다
. 너와 내가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 너와 내가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정서적 친밀감으로 행복해지는 것, 너와 내가 사회적 지위나 빈부와 상관없이 소중한 존재로 인정해 주는 것 등 참으로 많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이로움을 주는 무리끼리 어우러지고 있지 않은가. 경제적인 이득, 출세를 위한 줄서기,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만의 교감 등등이다. 이렇듯 복잡미묘한 관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고도의 전략과 경험적 공부가 필요다.


학술자료에 대인기만
(欺瞞)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어느 누군가에게 속임과 기만을 당하고 있지만 자신만은 아닐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누구나 악의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적당한 속임 속에서 세상이 굴러가고 있다는 뜻 아닌가.


또한 악의적이든 선의적이든 누군가를 기만할 때 뇌가 인지적 과부하를 수반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다
. 이는 진실을 가리기 위한 허위, 은폐, 모호하게 둘러대기를 하면 고도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상대방이 알아채면 신뢰가 무너지고 부정적인 평판으로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신체적인 반응도 일어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고통스런 일인가.


내 경우 나이 들자 건망증으로 황당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태다
. 여기에 과부하까지 걸리면 올바른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행동 전략(?) 훈련보다는 서서히 난감한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더 옳은 듯싶다. 다시 말해서 온갖 처세술을 앞세운 두꺼운 방어막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나의 모습 그대로를 좋아하는 사람들
! 이제는 그들만을 내 인생 멤버들로 남겨두리라. 마치 낡은 살림살이는 버리는 것처럼, 선거철에 겪는 스트레스형 인간관계를 줄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만 홀가분하게 남은 내 인생이 침몰하지 않고 안전하게 종착지까지 다다를 것 아닌가. 정말이지 노후 대책 중에 인간관계 재설정 항목도 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