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안 최영식 화백의 바리미 일기] 3월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03-09 10:57:05


 

▲ 우안 최영식 화백.
 

삼월의 첫 날은 비가 얌전하지 않고 여름비처럼 내리다가 진눈깨비로 바뀌고 아예 폭설 수준으로 눈이 내렸다. 봄이 다왔다고 방심한 것을 나무라듯 아직 몇 고비 더 남았다고 시위하는가 여겨졌다. 예상했던대로 기온이 밤엔 물론 낮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있었고 몸을 움츠리게 만들다가 선심쓰듯 하루쯤 봄기운을 풀어내며 일주일이 훌쩍지났다.


변닥많은 심술꾸러기가 따로 없다
. 호락호락 쉽게 봄을 내주지 않는다.

 

삼일절에 선조들이 받았던 고난과 시련을 일깨운다는 각성의 계기도 됐다.


비폭력 평화시위는 세계사에 거의 유례가 없었다
. 남녀노소, 전국 방방곡곡 양반과 평민, 빈부와 귀천을 초월하며 학식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나섰다.


초유의 일이다
. 비바람, 눈서리가 삼일절에 혼재하며 하루 종일 뒤흔들었다.


삼일정신은 현대에도 살아서 계승되고 있어 자랑스럽고 긍지를 가지게 된다
.


4.19
혁명이 그 첫번째 계승이었고 독재와 불의에는 항거가 끊이지 않았다.

 

삼월은 시작부터 분주했다. 시인 두 분과 비 내리는 중에 화실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영월에서 손님이 왔고 옥천화방에선 2월에 동파된 수도를 복구하는 공사를 했다. 실내 공사이니 비가 내리든 눈이 내리든 지장이 없다.


막대한 누수로 수도요금이 폭탄처럼 떨어졌다
. 손님들이 매일 이어지고 할 일들이 늘어서 있는 달이다. 정하선생께서 오죽헌 율곡매를 주문하셨고 인물을 주재로한 벽화도 세 점을 해내야 한다. 생소해서 심적 부담이 크다.

 

6일 모처럼 가을이 데리고 산보를 나섰다. 봄기운이 넘실대는 날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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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를 걸었다. 어디에도 봄이 안보였는데 송석원의 산수유가 부풀고 동네 많은 매화나무 중 가장 먼 곳에 있는 고목에 가까운 한 그루 매화나무의 어린 가지에서 꽃망울이 수십 송이 맺힌 걸 봤다. 이만하면 찾아 헤맨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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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 오늘은 내 집 울안 뒷곁 한 그루 있는 매화나무에서도 좁쌀같은 크기의 꽃망을 서너 개를 찾아냈다. 세심히 살펴봐야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번질테다.

 

그제도 대관령, 한계령엔 폭설이 내렸다. 춘천은 잔득 흐리고 강한 바람이 불었다.


광양매화마을 매화가 만발하고 산수유도 경쟁하듯 구례를 환하게 만든 사진이 풍성하게 인터넷에 올려진다
. 인간사 전 세계가 환란을 겪어도 위로하듯 자연은 제 자리를 지키며 꽃들을 피워낸다. 얼마나 다행인가. 힘내라는 축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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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경칩이기도 했다. 조금있으면 펼쳐질 꽃대궐에 가슴이 설렌다. 제자리를 지키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할 일에 충실한 나무에게 배워야 한다. 가장 어려운 수행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들떠 살던 습성을 차분히 가라 앉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