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보물 1호의 군대 이야기

지소현 승인 2021-03-03 11:16:53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아들을 군대에 보내 본 부모라면 가슴 조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 나 역시 큰 녀석을 군에 보내놓고 초조한 날들을 보냈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048월 초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늘 바쁜 나는 녀석의 입대 날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불쑥 엄마. , 내일 열시 쯤 논산으로 떠나.” 해서 깜짝 놀랐다. 남들은 입대 전에 보약도 먹이고 친척들 방문도 하면서 격려를 받는다는데 내 아들은 이게 뭔가 싶다. 보약은커녕 밥도 제대로 못 해 먹이지 않았던가.


부랴부랴 먹고 싶은 것을 물어봤더니 엄마가 해주는 비빔국수라고 했다
. 떠나는 날 아침 온갖 정성을 다해서 비빔국수를 해 먹였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하게 계세요.” 녀석은 오히려 변변치 못한 어미를 위로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녀석이 사라진 둔탁한 현관문만 멍하니 바라보며 입영지까지 따라와 눈물 흘리는 TV 화면 부모들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이별을 하고 한 달쯤 지나서였다
. 군부대 주소가 적힌 작은 상자가 배달되었다. 뚜껑을 열자 때 낯익은 운동화, 낡은 티셔츠와 청바지가 녀석의 체취를 물씬 풍기며 나를 맞았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만날 날이 정해진 이별도 이럴 진데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 심정은 오죽할까. 나보다 못한 최악의 상황 예를 들며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그 후부터 나는
, 나만의 방법으로 그리움을 달랬다. 여름날 자동차 내부가 불가마 같아도 절대로 에어컨을 켜지 않는가 하면, 한겨울 혹한기 훈련 기간에는 아파트 베란다 창문과 내 방문을 열어 놓고 잤다. 아들의 고통을 가늠하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일에 빠져서 남편 있는 여자가 부러울 시간도 없었는데 그때는 아니었다. 자식 걱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녀석에겐 동해안 해안경비병의 고달픈 임무가 주어졌다
. 그곳은 60년대에는 무장공비가, 90년대에는 북한 잠수정에 침투한 곳이 아니던가. 어쩌다 바다가 보이는 동해안 출장을 가면 넘실거리는 파도가 음모 서린 함정으로만 느껴졌다. 그러한 불안은 녀석이 첫 휴가를 시작으로 가끔 집에 다녀감으로써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5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녀석이 예상치도 못한 일주일 동안 포상휴가를 나왔다. 마침 720일이 생일이라 입영 때 못 해준 미안함을 담아 성찬을 차려주고 스스로 만족해 할 때였다. 난데없이 녀석이 귀대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 제가 보초를 서는 초소에서 총기탈취 사건이 났어요. 존경하는 상관이 흉기에 찔리고 납치당했어요. 만일 포상휴가를 오지 않았다면 제가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니 혼란의 회오리가 획 지나간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런 일을 운명이라고 하는가! 아들의 무사함을 행운이라고 기뻐해야 할지, 해를 당한 분에게 미안해해야 할지...


녀석의 말에 의하면 포상휴가를 오게 된 것도 납치당한 분의 배려 덕분이라 했다
. 평소 자상하고 후배를 잘 챙겨주는 분이었으며, 마침 휴가철이라 군인들이 민간인에게 위압감을 주어서는 안 되며 어떠한 경우든 총을 겨누지 말라는 교육도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민이 전선을 지키는 군인을 흉기로 위협하며 총기를 탈취하고 납치까지 감행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한단 말인가
. 언론에서는 민간인에게 총을 뺏긴 군대의 기강만을 해이하다고 탓해 댔다. 군인도 사람이거늘 무슨 천하장사라고 쏠 수도 없는 총을 가지고 흉기를 든 건장한 여러 명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해이해진 건 국민 모두의 의식이 아닌가.


나의 오만가지 심정을 뒤로하고 녀석은 서둘러 귀대를 하였다
. 온 나라가 시끄러운 진원지로 녀석을 보내고 날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도 보름 만에 범인이 잡히고 탈취당한 총기가 회수되면서 사건에 대한 무성한 말들도 잠잠해져 갔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제대할 때까지 기도에 매달렸다.


그 후 제대한 녀석의 이야기를 듣자니 간절한 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다는 믿음이 생겨 감사했다
. 훈련 중 벼랑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단 몇 초 사이에 피하지 못했다면 압사했을 거라는 일화, 아무리 치워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폭설 이야기, 초소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는 집채만 한 파도 이야기...


녀석이 말했다
. “군대처럼 사회에서 일하면 성공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녀석은 자기 분야에서 굉장한 노력파가 되었다. 그 결과 건재한 부모들의 지원을 받는 또래들과 비슷한 위치에 올라 나를 기쁘게 해주는 보물 1호가 되었다. 돌아보니 가슴 조인 그날들이 내게는 정신적 군대 생활이었다. 덕분에 진리 하나를 깨닫는다. ‘사람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맞기라.’는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