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휴대폰 없이는 못 살아 - “이 손안에 있소이다.”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1-02-16 12:32:39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7년 전 1월의 어느 날이다. 미루어 두었던 문우의 수필집을 탐독하다가 늦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출근 시간 삼십 분 전이다. 다급해서 대충 눈곱만 떼고 부랴부랴 옷을 입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였다. 아차! 휴대폰을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점심시간에 가지러 와야지.’ 포기했다.


겨우 지각을 면하고서 책상 위 일정표를 본 순간 휴대폰 없는 것이 께름칙했다
. 오전 11시 문화예술인 신년교례회에 문우 H와 참석하기로 적혀 있었다. 차가 없는 그를 1030분까지 태우러 가기로 한 말이 생각나 다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꼼꼼한 H가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찜찜함을 밀어냈다. 시계를 보니 1시간 여유가 있었다.


주섬주섬 책상을 정리하고 있을 때다
. 앞 건물 주인이 커피 한 잔 달라면서 들어 왔다. 11시까지 행사장에 가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말 그대로 차만 대접했다. 이어 사무실을 막 나서려는데 고등학교 선배님께서 불쑥 들어서는 것 아닌가. 시계를 보니 10. H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30분이 남았다. 반갑기도 했지만 난처하다. 잠깐 인사만 드리고 일어서리라 생각하고 자리를 권했다.


그런데 선배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 ‘! 휴대폰이 있었다면 H에게 늦는다고 문자라도 보낼 수 있을 텐데.’ 조바심이 났다. 책상 위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을 때다. 그의 휴대폰 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추운 날씨에 길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예고 없이 찾아온 선배님이 야속하다.


흘깃흘깃 벽시계를 훔쳐보는 내 모습이 불쾌했는지 선배님이 일어서신다
.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약속시간 10분이 지난 것을... 미처 정중한 사과도 못하고 서둘러 자동차에 올랐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해 보니 H가 없었다. 택시를 타고 먼저 행사장으로 간 것일까? 연락도 없이 늦어지는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또다시 속도를 내서 행사장으로 갔더니 이미 의전이 치러지고 있었다. 방해가 될까 봐 조심조심 H가 있나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기다리다 바람맞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 틀림없다. 심란해서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대 위에서 나를 맞는 휴대폰이 너무나 반갑다. 재빨리 들여다보니 부재중 메시지가 떠 있었다. “미안해요. 갑자기 일이 생겨 행사에 못 가요. 혼자 다녀오세요. AM 09:40. 발신인 H...”


순간 짜글짜글 끓던 가슴이 찬물을 부은 것처럼 시원해졌다
. 숨을 고르고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 보았더니 선배님에게서 온 메시지도 있었다. “지나는 길에 잠깐 얼굴이나 볼까 하는 데... AM 09:20.”세상에나! 선배님은 예고 없이 방문한 것이 아니라 내게 의사를 물었고 답장이 없으니까 와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럴 수가
! 휴대폰이 있었다면 오전 내내 동선이 꼬이고 허둥대지도 않아도 되었다. H와의 약속 때문에 애태우지 않았을 것이고, 행사장에도 늦지 않게 참석해 반가운 분들과 덕담을 나눴을 것이다. 그리고 선배님께도 무례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수시로 타인과 교신하며 빛의 속도로 살아가는 시대, 휴대폰 없는 세상사를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나는 어떤 경우에도 7년 전 그날 아침처럼 휴대폰을 두고 집을 나서지 않는다. 통화는 물론이고 수시로 그룹별 단톡방을 확인하고 이동 중에도 업무를 본다. 음악을 듣고 은행 볼일을 보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재빠르게 검색을 한다. 잠자리에서는 유튜브로 관심 분야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듣고 지나간 사진첩을 들추기도 한다. 즉 한 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몸을 떠나 마음도 하나가 되었다
.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 회의, 공연, 행사, 토론회, 물품 구입 등등 언택트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손바닥만 한 그 물건이 거대하게 느껴진다. “세상사가 모두 이 안에 있소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소리 없는 힘의 중심에 휘어 잡혀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