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아! 복면의 시대여!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0-12-08 10:54:15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새해 벽두에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바이러스 소식이 들려 왔다. 가끔 전염병 상황이 있었고, 그때마다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했던지라 이번에도 한시적이겠지 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적과 총칼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재난공포영화 장면이 실제 상황이 된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코로나19’ 뉴스특보가 나오고 마스크 착용을 비롯해 갖가지 예방수칙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특히 필수품 마스크를 사려고 판매처마다 줄을 선 인파들을 보니 6.25 전쟁 흑백영화가 생각났다. 주린 배를 채우려고 식량 배급 현장에 늘어선 빛바랜 얼굴들이 말이다. 새벽부터 몇 시간씩 기다리고, 신분증을 제시하고, 장애인·노약자 등은 그나마도 어려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동안 누려왔던 풍요와 평온이 기적처럼 느껴지면서 곳곳에서 마스크 복면(?) 시대의 낯선 풍경도 목격했다.


어느 날 시장에서다
. 두 남성이 마주 보고 있었는데 험한 육두문자가 마구 들렸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으나 둘 중에 누가 욕설을 뱉어내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흰 마스크 위로 빼꼼한 양측의 눈을 보니 똑같이 성이 나 있는 것 만 알 수 있었다. 마치 복화술(腹話術) 장면을 보는 듯했다.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알 수 있다. 그동안 은행 창구에서 돈을 인출할 때 마스크를 쓰면 벗으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지금은 마스크를 안 쓰면 제 돈 찾는 것도 힘들다. 그리고 패션의 일환이 되어 보석 박힌 마스크가 등장하고 선물로 마스크를 건네는 이들도 있다. 그 옛말 양말 한 켤레가 혼수 예물도 되고 스승의 날 선물도 되던 것처럼...


이처럼 웃지 못할 현실은 신문화를 만들었다
. 모든 사람이 걸어 다니는 세균 뭉치라는 가정 하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규칙이 생겨났다. 매년 초에 열리던 각종 단체 총회도 문서로 대체되고 가까운 이웃이 중병으로 입원을 해도 문안조차 접었다.


정기 친목 모임이 미뤄지고 혈육 간에 오가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 그중에 나 역시 일생일대 안타까움의 주인공이 되었다. 금쪽같은 첫 손자 유치원 입학식에 못 간 것이다. 허전한 마음을 국가의 백년대계인 모든 교육현장이 멈춰버린 뉴스를 보면서 달랬다. 평소 잘 아는 국악인도 무대가 없어 노래 대신 한숨을 내쉰다고 하고 친구는 딸 결혼식을 가족들끼리 할 거라며 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음식점을 하는 후배가 임대료 내기도 버겁다고 한탄을 하더니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내게 위안처이던 교회는 인터넷으로 예배를 보라는 안내문과 함께 출입문을 걸어버렸다. ! 하나님은 어디 계신 것일까. 허공의 보이지 않는 세균과 맞서 싸우느라 멈추고 사람에게 번호를 붙여 추적하고...


어디 그뿐인가
. 언 땅이 녹고 새싹이 돋고 봄꽃이 만발해도 먼발치에서 눈부신 계절을 지나쳤다. 한여름 폭우가 전국 곳곳에 상처를 내고 이어서 또다시 세균들이 기승을 부렸으며, 지금 겨울의 문턱에서도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는 생소한 두려움의 시대! 전 세계가 당면한 문제니 불평할 수 없다. 오죽하면 코로나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생겨났을까, 그것으로부터 나라고 제외되지는 않았다.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작은아들 내외의 짓무른 입술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고, 병원에 근무하는 큰아들 내외가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많았다.


옛말에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것이 있다. 정신을 집중하면 이겨내지 못할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다. 포탄에 피투성이로 쓰러지는 가족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6.25 전쟁을 생각하면 지금의 소리 없는 전쟁은 그나마 견딜 만하지 않은가. 정신 바짝 차리고 살다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때에는 새삼 새삼 소소한 일상이 감사하게 다가오고, 또 다른 행복지수 측정 항목이 생겨날 것이다. 행복지수란 강도보다는 빈도가 더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