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침침한 시력 너머 있는 것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0-12-01 11:22:32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나이 들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침침한 시력이다. 눈은 마음의 창을 넘어 정신의 창 같다. 사물이 희미하게 보이면서부터 머릿속이 멍한 날이 늘어갔으니 말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집중도 잘되지 않는다. 사회생활의 기본이 쇠락해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지. 젊은 시절 동네 어르신들이 내가 묻는 말에 엉뚱한 답을 하면 동문서답 한다고 실소하였던 것을 반성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이야기를 할 때도 생각했던 말을 이어가던 중 옆으로 빠지는 것을 순간순간 깨달을 때가 있다
. 예를 든다면 요즘 대세인 트로트 가수 이야기를 한다고 치자. 어제 본 방송 장면을 전하다가 문득 그 가수와 연관된 다른 것이 떠오르면 하던 말 중간에 쑥 집어넣는다. 마치 식사 때 김치 그릇에 불고기 한 점을 불쑥 얹는 것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생뚱맞은가. 뒤죽박죽 구불구불한 이야기의 맥락! 중언부언이라는 속담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 것인지.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수다스러운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외국 단어들이다
. 유명한 사람 이름 글자를 뒤섞는다. 어린 시절 이웃집 할머니가 크리스마스 즈음에 마크스크리스가 다가오니 춥네.”해서 크게 웃었었다. 크리스마스나 마크스크리스나 할머니의 말만 이해했으면 됐지 괜히 웃었다. 그래서 요즘 나도 가능하면 외국말을 쓰지 않는다. 누군가가 웃을 것만 같아서다.


일상의 단어들은 사용 안 하면 그만이지만 많이 접하는 낯선 용어들은 난감하다
. 신문기사, 방송 등을 볼 때면 앞뒤 내용과 상황을 보며 대략 뜻을 유추하고 넘긴다. 그리고 신세대 가수 노래에 영어가 섞인 것은 들어도 감동이 오지 않는다. ! 늙는 것도 서러운데 무식해지기까지 하니 어찌하나.


무식이 단번에 들통난 일도 있다
. 인천에 사는 큰아들에게 택배를 보낼 때다. 아파트 이름을한양수자인레일바이크로 알고 있었는데 택배 접수 때 우체국 창구에서 한양수자인레이크블루라고 정정해 주어 정확히 알았다. 아파트 이름이 시어머니 찾아올까봐 외국어로 길다는 말이 생각나 혼자 웃었다.

 

이러한 멍한 정신은 글을 쓸 때도 나를 슬프게 한다. 컴퓨터 화면을 30분 이상 쳐다보면 문자들이 희미한 형체로 춤을 춘다. 8자가 3자로 둔갑을 하는가 하면 어머니어미니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되기도 한다. 가느다란 실눈이 되고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잡히면서 떠올랐던 이미지들도 쭈글쭈글 사라진다. 가끔 환갑이 넘어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 미담을 듣는데 그들의 초롱초롱한 정신이 부럽다. 나로서는 40세 등단 이후 꿈이 베스트셀러 작가였는데 그것마저 이제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80세에 부활이라는 명작을 남긴 문호 톨스토이가 있다지만, 나는 그 정도로 비범하지 않으니까.


꿈조차 접어야 할 지경에 이른 침침한 상태
! 휴대폰 문자도 대충대충 읽다 보니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문단의 선배님이 점심을 먹자고 톡을 보내왔다. 얼핏 보니 수요일이라고 했다. ‘오늘이 화요일이지? 내일이네.’ 다음날 서둘러 오라는 야외 식당으로 갔다. 때마침 비가 쏟아져서 운치를 더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훨씬 넘어도 선배님이 나타나지 않는다. 평소 성품으로 보아 늦을 분이 아닌데 말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걱정되어 전화를 하니 오늘 수요일이 아니라 돌아오는 수요일이라 한다. 문자를 대충 흩어본 나의 멍한 정신 때문에 맞은 바람이다. 붐비는 점심시간에 한참 동안 자리를 차지한 것이 미안해 막국수를 주문했다. 비오는 날 경치 좋은 식당에서 홀로 막국수를 먹는 늙수그레한 여인! 얼마나 쓸쓸해 보였을까.


가끔 침침한 시야 너머로 미래를 생각해 본다
.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수다스럽고, 글씨는 틀리기 일쑤고, 쇠락하는 집중력과 함께 꿈도 사라지고... 아마 십년 쯤 뒤에는 외부로 통하는 모든 감각이 막혀서 벽을 문이라고 내미는 늙은이가 되지 않을까? 정말로 끔찍하다.


침침해지는 시야가 내면을 향하도록 훈련을 해야겠다
. 지난날의 상처, 열망, 욕심, 미움들이 하얗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자리에 어린아이처럼 순수를 가득 채우고 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