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선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0-11-17 11:12:31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누구나 죽지만 그 이야기는 음산한 바이러스처럼 멀리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사별을 비롯해 초상집 조문을 하면서 죽음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다. 가끔은 내가 그 상황에 당도하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도 해 본다.


알지 못하는 세계로 가는 것이 두렵고 눈에 보이는 것들과 단절이 슬퍼서 몸부림칠까
? 아니면 남다르게 험난했던 내 삶에서 벗어남이 홀가분해 평안히 잠 속으로 빠져들까? 어느 쪽이라는 답은 얻지는 못했지만 죽음이란 생명의 종착지이기에 준비하는 마음이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돌아보면 내게 가장 충격적인 첫 주검은 어린 조카였다
. 당시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언니의 여섯 살 난 딸을 무척 사랑했었다. 통통한 볼에 보조개를 지으며 웃는 모습,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먹어대는 식성, 리본이 예쁜 긴 머리... 어느 것 하나 귀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 조카가 봄바람이 심하게 불던 3월의 어느 날, 동네 아이들 불장난하는 곳에 갔다가 옷으로 옮겨 붙은 불길에 화상을 입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형부가 담요에 쌓인 조카를 안고 현관에 들어서던 모습을 떠올리면 심장이 멈추는 것 같다.


두 번째는
40세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오빠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삼십여 년 전 7월의 어느 날이다. 과일가게를 하던 오빠는 고창으로 수박을 사러 가는 동료 상인 트럭에 동승했다가 참변을 당했다. 제천 주변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다. 마주 오던 트레일러가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으면서 그들의 트럭을 덮쳤다. 아침에 집을 나간 사람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그보다 더한 허망함이 어디 또 있으랴. 세월이 흘러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는 말을 실감하면서도 슬픔은 골수에 스며있다.


이처럼 남다른 사별을 두 번이나 겪은 나는 때때로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옛말을 떠올리며 살아왔다
. 그것이 마음의 근육이 되었는지 친정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셨을 때는 준비된 자의 여유처럼 잠깐만 슬펐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모정이 그리워 긴 시간 울었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체념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낼 때마다 눈물의 농도가 달랐고 잊히는 과정도 달랐다. 예상치 못한 것과 예상했던 것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다섯 시간에 거친 고관절 수술을 받을 때 구체적으로 죽음을 이해한 적이 있다
. 마취 주사가 꽂히자 졸음이 몰려오더니 메스로 살을 가르고 뼈를 뚫어 볼트로 조여도 몰랐다.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깨어났을 때였으며 고통도 살아 있는 자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의 소제가 되고 종교의 근거가 되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기독교에 의지하여 두려움을 이기고, 소멸해 버리는 바람과 같다는 허무주의 관점에서 체념한다. 그리고 또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윤회설에 소망을 걸고, 영혼이 되어 떠돈다는 토속신앙을 믿고 제사를 지낸다.


현실에 달라붙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울고 웃는 우리네 인생
! 노후의 삶은 이야기해도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는 생각 자체를 금기시하지만, 유한성을 인정할수록 좌절과 아픔 고통까지도 살아 있다는 증거로서 감사의 조건이 되지 않을까.


최근에 본 신앙심이 깊은 어느 지인 생각이 난다
. 노환으로 임종을 기다리면서 말했었다. “지금 나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의지가 됩니다. 가족도 재산도, 명예도, 어느 것도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하면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인간으로서 최후의 자존심과 품위를 보여 준 것이다. 나도 남아 있는 날들을 감사와 믿음으로 엮고 싶다. 세상을 떠날 때 가족, 친지들에게 평온을 선물로 남기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