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건강한 웃음이 필요한 시대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0-11-03 11:26:37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근간에 널리 알려진 웃음 치료가 있다. 치료라는 용어에 나타나듯이 처음에는 병원, 복지시설 이용자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 기관, 단체, 기업체의 워크숍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나도 장애인복지시설에 근무할 때 웃음 치료에 참여한 적이 있다
. 그때 강력한 피로 회복제를 복용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했었다. 강사가 시키는 대로 입을 크게 벌리고 억지로 하하소리를 내자 진짜 웃음이 폭발했다. 시작할 때 쑥스러움이 가시면서 옆 사람 소리가 우스워서 웃고 내 목소리가 기괴해서 웃고, 너도나도 마주 보며 하하댔다. 가슴이 후련해지고 모두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웃으면 엔돌핀이 솟으면서 긴장감이 해소되고 혈액 순환도 잘 된다는 의학적 통설을 체험한 것이다.


이처럼 신이 주신 값없는 특효약이건만 우리의 유교적 문화는 자주 웃는 사람을 경박스럽고 헤프고 마음 약한 소인배처럼 치부해 왔었다
. 근엄한 표정의 대감마님 앞에 복종의 웃음을 흘리는 하인처럼, 신분의 귀천과 웃음의 횟수가 반비례한다고 믿었던 것일까. 하지만 아닌 것도 같다. 사극을 보면 적군과 맞장 뜨는 장군이나 대감들은 일단 아하하소리를 내고 말을 이어 간다. 웃음이 두려움을 없애는 호흡의 일종이라는, 오늘날의 연구결과를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시의적절하게 필요한 웃음
! 언젠가 어떤 정치인이 안타까운 사고지역 주민들에게 위로의 손을 내밀면서 이빨을 환하게 드러내 구설에 올랐던 기억이 난다. 그 같은 실수는 나에게도 있다. 지인 부모님의 조문 갔을 때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반가운 분을 만났다.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면서 손을 잡고 보니 아차 싶다. 때와 장소를 분별하지 못한 경박함을 상주들은 거북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분열의 극치로 치닫는 지도자층 언행에서도 가끔 실소를 자아낼 때도 있다. 분별력을 담당하는 지각에서 튕겨 나와 발산된 어처구니없는 웃음도 건강에 효과가 있을까? 문득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의에서 벗어난 웃음, 즐거워서 웃는 웃음, 상업상 웃는 웃음, 차갑게 웃는 냉소, 남을 업신여기는 비웃음, 억지로 짓는 쓴웃음...


물론 약이 되는 것은 내게 유익하고 나아가 인간관계를 공고히 하는 건강한 웃음이다
.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전문가들은 많이 웃는 사람이 적게 웃는 사람보다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고 병에 걸렸을지라도 회복이 빠르다고 한다. 과거 경제도약 시기에 스마일 운동이 있었다. 미소 짓는 눈과 입이 그려진 동그란 마크를 가슴에 달고 공익광고 지면에도 자주 등장했었다. 이런저런 복잡함으로 웃음을 잃어가는 현대인들! 100세 시대 웰빙 열풍을 타고 인위적으로라도 웃는 프로그램이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