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힘을 빼세요.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0-10-20 11:15:58


 

▲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표창 등 다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즐거운 것들과 건강에 대한 관심사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다. 휴일마다 산으로 들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마치 벌통 앞 꿀벌 떼처럼 소란스럽고, 동네마다 있는 체육관은 수많은 이들의 체력단련장이 되었다.


하지만 오른쪽 엉덩이가 인공관절로 불편한 나는 최소한의 걷기만 가능해서 어떤 무리에도 끼일 수 없어서 늘 서글펐다
. 그야말로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지라 나이 들자 전신이 나른하고 틈만 나면 눕고 싶을 때가 많아졌다. 가끔 손발에 쥐가 나기도 해 혹시 뇌졸중 징조가 아닐까 더럭 겁도 났다. 일찍 죽는 것은 감내할 수 있으나 누워서 대소변 못 가리면 두 아들에게 폐가 될 것이니 어찌하나.


나도 무슨 운동이든 한 가지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많이 걷지 않는 수영을 선택했다
. 지나다니면서 본 스포츠센터에 등록을 하고 생소함과 어색함을 견디면서 열심을 냈다. 부력에 이리저리 밀리는 팔다리를 가누며 강사가 시키는 대로 움파’, ‘움파호흡법을 배우고 난간에 앉아 발차기 연습까지는 그런대로 무난하였다. 하지만 물에 뜨는 훈련이 만만치 않았다. 힘껏 키판을 잡고 물에 엎드리니 바닥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힘이 몸통을 뒤집어 놓는다.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본능적으로 전신에 힘을 주니 다리부터 가라앉으면서 허우적허우적 물까지 먹었다.


힘 빼세요. 힘을 빼야 물에 뜹니다.’ 강사가 외친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빠져 죽기야하겠어?’ 체념하듯 공포심을 버리고 침대 위처럼 편하게 엎드리자 몸이 떠올랐다. 균형을 잡으려면 힘을 주어야 하는 공기 속과 물속은 반대였다. 문득 세상 이치 하나를 깨달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는 익숙한 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을...


지난 날 몰라서 힘을 주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


70
년대 내 고향 평창 읍내 택시들은 문살짝이라는 글씨를 옆구리에 붙이고 다녔다. 택시를 타고 내릴 때 쾅하고 문을 닫은 승객들에게 문 부서진다고 화를 내는 운전기사가 많았다. 문을 확실히 닫기 위해 힘을 쓴 승객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체 무안함을 참아야 했다. 또 한 관공서와 부잣집에나 있는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놓을 때도 소리가 나야 상대방과 대화가 끊긴 줄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절
,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낮선 물건을 힘껏 다루게 하였을까? 아마도 힘들여 일하던 농경문화 습관일 것이다. 삶은 환경의 지배를 받고 그 지배는 습관을 만들어 내고 습관은 옳다고 믿는 잣대를 생성시켜서 새로운 것을 접하면 당황하게 한다.


나는 그 습관 때문에 수영 배우기 말고도 혼란을 겪었던 것이 또 있다
. 5년간 손때 묻은 폴더 폰이 망가져서 최신형 스마트폰을 샀을 때다. 번호판을 꾹꾹 누르던 손가락이 스치기만 해도 통화가 끊기고 의도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화가 연결되는 기기가 불안했다. 핸드백 안에서 다른 물건과 스쳐 오작동을 일으킬 것만 같았고, 판매장에서 깔아 준 앱(application)들은 바가지요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익숙해진 지금은 어떤가. 통화 용도 외에도 사진기, 은행업무, 티비 시청, 지식정보 습득,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 소통 등등 침대 속에서조차 손에 들고 있는 일심동체 물건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문명의 발전은 물리적 힘이 필요치 않은 곳으로 향했다
.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들이 힘을 빼고 살게 할까? 명령만으로도 운전이 가능한 자동차, 생각만으로도 작동이 가능한 가전제품, 집안에서 업무를 보는 직장, 필요한 영양을 보충해주는 알약...


그래서 나는 요즘 육신의 건강을 위해 힘 빼고 수영을 배운 것처럼 힘껏 얽혀있는 고정관념 고리들을 느슨하게 푸는 노력을 하고 있다
. 100세 시대에 소외당하지 않는 늙은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