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 낸 에세이] 기억력 살리기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0-10-13 10:03:08


 

▲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강원문화예술인 유공자(문학부문) 표창 등 다수

 

요즘 부쩍 건망증 때문에 우울하다. 가끔은 치매 환자가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기억에 자신이 없어지자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메모를 할 수 없는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사람 이름을 잊어버리는가 하면 통용되는 외래어를 틀리게 말하고 남들과 한 약속들이 하얗게 지워진다. 학창 시절 암기과목만큼은 1, 2등을 다투었는데 이렇게 변하니 참으로 허망하다.


최근 일요일에는 쇠퇴한 기억력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일도 있었다
. 동생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까맣게 잊고 내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났을 때다. 요란스럽게 울리는 전화기에 동생 이름이 뜬다. “언니! 왜 안 와? 두 시가 넘었어. 밥상 차려 놓고 기다리다가 배가 너무 고파 전화했어.” 짜증이 한껏 묻어있다.


아차
! 기억난다. “. 이제 갈 거야. 기다려.” 거짓말로 얼버무리고 벌떡 일어나 부랴부랴 옷을 입었다. 운전을 서두르면서 점심 먹었으니 혼자 먹으라고 할 걸 그랬나? 아니야. 땅벌 침을 맞느니 거짓말하길 잘했지...’ 갈등했다. 배고픈 동생을 생각하니 신호등이 야속하고 내 건망증이 서글프다. 세 시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해 푸짐한 요리를 마주하니 뭉클하다. 부지런히 허기를 메우던 동생이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배부른 나를 향해 말했다. “언니! 어디 아파? 맛이 없어? 불고기 듬뿍 넣고 쌈 싸서 많이 먹어.” 그의 정성이 미약한 내 기억력 탓으로 빛을 잃는 순간이다. 문득 치매 환자들 가족의 단절감과 절망감이 이해가 간다. 사랑으로 보살피는 쪽과 그 사랑을 몰라주고 딴청을 부리는 쪽의 건널 수 없는 교감의 다리! 이산가족의 비극에 버금가지 않는가.


아니야! 맛있다. 고마워!” 연기하면서 배가 불러 숨이 가쁜 곤욕을 치렀다. 덕분에 나의 실수는 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지만 황당한 일은 수없이 일어난다.


신용카드를 마트에 두고 오는 일
, 전화기를 찾는 일, 냉장고 문을 열고 내가 무엇을 꺼내려고 했었지? 생각하는 일, 전화를 걸어 놓고 상대방이 받으면 하려고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일, 비싼 선글라스를 잃어버리는 일, 우산을 놓고 오는 일, 한쪽만 나뒹구는 귀고리들, 양말들...


어느 날 고민을 친구에게 말했다
. 그러자 자기도 그렇다고 하면서 경험을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인의 자동차를 얻어 탔을 때였어. 조수석에 앉아 친구 핸드백을 내 무릎에 올려놓았어. 그런데 내릴 때 그의 백까지 내가 들고 내렸지 뭐야. 더욱 웃기는 것은 곧바로 택시를 타고 찾아가 백을 돌려줄 때였어. 그가 자기 핸드백 없어진 것을 모르고 있더라고.” 남의 백을 들고 내린 친구나, 백이 없어진 것도 모르는 그의 지인이나 낡아버린 정신 상태는 비슷하지 아니한가. 얼굴의 노화 현상은 의학의 힘으로 숨길 수 있지만, 정신의 노화 현상은 감출 길이 없다. 박장대소를 하면서도 서글픔이 일었다.


100
세 시대다. 멍청한 늙은이로 오래 살면 어찌하나 싶다. 인터넷을 뒤지니 기억력에 좋다는 음식과 운동, 건강보조식품들이 많다. 그 중 독서가 좋다고 해 두려움의 방패막이로 책을 읽는다. 집중력이 떨어져 앞 페이지 내용을 잊어버리면 앞장 뒷장을 번갈아 넘기면서 고도의 훈련을 한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노력하는 자체가 아직은 다행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