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을 그려낸 에세이] 하나로 열을 판단 할 때의 오류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지소현 승인 2020-09-01 16:36:04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

강원문인협회 이사, 강원수필문학회 부회장 등.
수필집: 지혜로운공존 외 3, 동인지 활동 다수

 

속담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것이 있다. 이는 어떤 사람의 무심코 드러나는 행동을 보고 그의 됨됨이를 판단해도 별로 틀리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를 보고 열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가, 생각해본 적 있다.


도 단위 각계 대표들이 모인 어느 중요한 회의 장소였다
. 일찍 도착한 나는 기다리는 동안 탁자에 준비된 회의 자료를 핸드백에서 청색 싸인 펜을 찾아 들고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때 마침 평소 안면이 있는 분이 앞자리에 앉으셨다.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일어나 악수를 하고 다시 앉아 읽고 있던 회의 자료에 눈을 돌렸을 때였다. 분명히 책자 중간쯤에 끼워 둔 펜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탁자 밑에 떨어졌는가 하고 고개를 숙여 두리번거려도 없고 탁자 위 여기저기를 훑어보아도 없다.


감쪽같이 어디로 갔을까? 혹시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요즘 들어 나날이 기세를 더해가는 건망증을 탓해 본다. 회의 자료 여기저기 난 흔적을 보면 분명히 있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중얼거리며 찾기를 포기하고 다시 핸드백에서 다른 펜을 꺼냈다
. 그런데 회의가 시작되고 없어진 싸인 펜 생각도 사라져갈 즈음이었다. 무심코 바로 옆에 앉은 모 단체 대표를 보니 내 것처럼 느껴지는 펜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 아닌가. 혹시 잘못 보지 않았을까 해서 다시 보았으나 틀림 내 것이다.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 자신이 쓰고 있는 펜의 출처를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옆자리의 내가 수선스레 무언가를 찾을 때 이것이냐고 물어보지도 않다니.


갑자기 그분이 능청스럽고 뻔뻔스런 심성의 소유자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 그러자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붙임성 있게 굴던 그의 첫인상이 경박함으로 돌변하고 남다른 옷도 거슬린다. 모두가 정장인데 혼자만 갈색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었다. 이처럼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독불장군이 어떻게 지역사회 지도자가 되었을까.


곧이어 토론 시간에 그가 문제의 내 펜으로 빼곡히 메모한 생각들을 당당하게 발표하기 시작한다
. 마치 이 시대 고민을 혼자 짊어진 것 같은 비분강개 말투가 귀에 거슬린다. ‘참나오만가지 거부감을 부글부글 끓이느라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듣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 누군가가 그의 열변에 감동 어린 동조를 했다. 회의를 주관하시던 모처의 기관장까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수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까지 곁들이면서 박수를 이끌어낸다. 줄곧 부정적인 생각의 도배를 그에게 해대던 나는 야릇한 기분을 한 번 더 느껴야 했다. ‘사람이 겉과 속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모든 사람이 속고 있다고 남몰래 입을 비죽거렸다.


하지만 나는 뒤늦게나마 그분의 말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요지는 곳곳에 만연하는 환경문제 사례였다.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박수 치는 일에 동참하고, 과연 그분이 말만 번드르르 한 위선자였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내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았다. 볼펜이 내 것이라고 했으면 될 것을 말 못하고 전전긍긍하다니! 그 이면에는 혹시라도 그가 미안해 할까봐 미리 배려한 두루뭉술한 내 습성도 있었고, 펜이 자기 것이라고 혹시라도 우기면 내 것이라는 증거를 대야 함이 번거로워 슬그머니 포기한 내 심약함도 한몫하지 않았던가. 논리 정연한 말로 좌중을 사로잡은 그의 됨됨이를 하찮게 여긴 나야 밀로 진정 허접한 인간이었다.


어쩌면 악수를 하기 위해 내가 일어섰을 때 회의 자료에서 펜이 빠져나와 그 앞에 굴러가고
, 그는 펜을 주최 측에서 준 것이라고 믿고 아무렇지 않게 썼을 수도 있다. 아니 잠깐 쓰고 돌려주려고 했는데 메모에 열중하여 잊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내가 남에게 한 작은 실수들을 떠올려본다
. 급한 성격 탓에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낸 일, 조금만 기다렸으면 한 번에 끝났을 일을 서둘러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가 잘못 되어 다시 고치는 수고를 시킨 일 등등 수없이 많다. 이러한 것들이 나의 전체로 인식되어 행여 요소요소에 적을 만들었거나 허름한 인간으로 낙인찍혔을지도 모른다.


씁쓸한 마음을 다스리며 시대에 맞는 인간관계 변을 늘어놔본다
. 현대는 수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하나가 그 사람의 전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넓던, 단순한 그 옛날 말을 지금 접목한다는 것은 고도의 수학을 암산으로 해결하려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해서 이제부터 나는 하나로 남의 열을 판단하기 전에 내 잣대가 정확한지 생각부터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복잡한 인간사를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