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1년 제3회 강원도 장애인 생활 수기 공모 작품 - 장려상
정영자(강원도시각장애인연합회 양구군지회) / 안개꽃 속에 장미꽃 향이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2-23 10:59:24

강원도장애인단체연합회가 주최한 “2021년 제3회 강원도 장애인 생활 수기 공모입상 7편을 순위대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정영자(강원도시각장애인연합회 양구군지회)

 

모퉁이 마루에 걸터앉아 앞마당을 바라보면 풀잎 위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영롱한 이슬방울들과 돌 틈 사이로 예쁜 꽃들과 초록빛 풀들이 햇빛에 눈이 부셔 찡끗 미소 지으며 나를 향해 인사한다. ~ 예쁘다 저절로 내 심장이 바운스 거리며 설레인다. 옆 산자락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소리 나뭇잎들이 서로 부대끼며 제잘 거리며 나부끼는 소리, 날 기쁘게 하는 소리들~ 모두 귀한 내 친구들 그립다.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리며 아련한 그리움에 젖어 본다.


앞뜰에서 뒤뜰에서 마구 뛰어놀며
, 우리 집에 갓 시집온 올케언니가 울 오빠랑 친하게 지내는 게 샘이 나서 매일 놀려주기만 했던 기억, “! 맛난 거 안 주면 엄마한테 이른다!” 하면서 까불고, 못된 시누 노릇 톡톡히 하면서 마냥 개구쟁이였던 철없던 어린 시절, 커다란 대문 앞에 간땅꼬원피스를 곱게 입은, 인형처럼 예쁜 여자아이가 올케언니한테는 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지. 명절 때마다 만나면 듣는 레퍼토리가 되어버렸다. 이젠 같이 늙어가며 내겐 친정엄마의 존재가 돼버린 올케언니께 마냥 미안한 마음인데, 마음착한 성님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윽하게 항상 감싸준다.


지금은 늘 마음 아파하며 날 막내딸처럼 대해주는 마음 착한 올케언니께 감사하고 미안함뿐이다
. 청명한 자연이, 파란 하늘이, 해맑은 공기가 소중한 가족이 그토록 아름답고 고귀한지를 그땐 왜 몰랐을까? 이제는 울긋불긋 변화되는 사계절의 다양한 색깔의 다름이 이토록 애타게 그리울 줄이야! 볼 수 있는 당연함이 행복이었음을 이미 바람처럼 떠나버린 후에야 알아버렸네~ 미소가 머금은 슬픔이여 아련한 추억을 더듬다 보니 그리움에 빠져 버렸네~ 아련함, 그리움, 애절함, 어떠한 표현도 애잔한 이내 가슴 달래지려나.


신나게 즐겁게 지내던 학창 시절
, 화려했던 젊은 청춘을 뒷전에 새겨본다. 어른이 되어가며 내 친구들, 가족들도 서서히 멀어짐에 파도처럼 철석 거리며 멀리 사라져가네. 혼자 남은 시간에 밀려오는 모래알 같은 껄끄러움이 날 외롭게 하네. 존재하지 않은 고독과 대화를 나누며 쓸쓸한 밤의 공간을 그득하게 채워본다. 빨강 꽃도 분홍 꽃도 노랑꽃도 모두 안개꽃이 되어 내 마음 간질거리며 설레게 한다. 그래 난 안개꽃을 좋아했지.


모든 사물이 안개 속으로 스며드는 걸 깨닫는 순간 여러 색깔의 꽃들이 안개꽃으로 보임을 받아들인다
. 형형색색 빛나던 자연이 당연하게 여기고 아름답고 고운 자연이 자연스러움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던 내 가치관이 무색해지는 이 순간 당연한 행복의 소중함을 이제야 깨달았네. 지금 이 순간의 행복함도 먼 훗날엔 그냥 자연스럽게? 이제는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련다.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데로 안개가 많이 생기는 데로 그대로 익숙해지련다. 오늘은 유난히 안개가 많이 생겼네. 내일은 해가 뜨려나... 고향을 떠나 도시의 화려했던 타향살이도 등지고 낯선 외딴 시골집으로 정처 없이 새로운 노후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저 여자는 서울에서 왔다고 시건방지게 인사도 안 받고 싹수가 없다는 둥 옆집 아줌마 동네 어른들이 수군거림이 메아리쳐 옴을 뒷전으로 재치고 내 건강을 찾아 매일 동네를 순회하며 걷고 또 걷는다
. 살기 위해서, 오로 시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매일 안개를 헤치며 아는 길로만, 다닐 수 있는 길로만,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실룩실룩 신나게 장애물이 없는 익숙한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어제는 매몰차고 냉랭했던 동네 사람들이 이젠 먼저 아는 척을 하며 목소리를 내며 인사를 하네, 하하 어제는 흐림, 오늘은 맑음 내일은 소나기일까? 또다시 개이고 맑은 날씨처럼 인생이 그러함이네. 흐뭇한 미소가 입가의 보조개를 자극한다.


으로 향해 같은 길을 맑은 공기를 마시며 비취색 빛을 받으며 걷고 또 걷는다
. 그래도 나의 포근한 집은 찾아오네. 감각과 느낌으로 안개를 헤치고 집을 찾아올 수 있으매 감사하다. 집을 찾을 수 있는 기억은 보물이다. 나의 소중한 눈이 되어준 느낌과 감각이 살아있음에 다행이다. 안개 속을 헤매던 중 인생의 후반기에 시각장애인 협회에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다. 놀라웠고, 신기했다. 새로운 짜릿함이였다. 날 이해해 주는 곳, 날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런 공간도 있었다니! 안 보이는 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이 묘한 감정의 실마리는 무엇일까? 텅 빈 내 자존감 가슴속 깊이 맺혔던 알 수 없는 사무침이 속절없는 애련함이 스멀스멀 내 깊은 어디엔가 기어들어오고 있다.


아앗
! 제기랄! 그런데 왜? 나보다 더 못 보는 사람들이, 나보다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건가? 나만 못 보고, 나만 몸이 불편하고,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었는지 세상을 원망하고 안 믿는 하나님, 부처님까지 원망하고, 엄마 아빠 형제 가족 친구들까지 미워하며 세상 살기 싫었는데. 생을 포기하고 싶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미치도록 밉고 부끄럽게 여겨지는 이 순간이 머쓱하다. 속절없는 미안함이 밀려온다. 새로운 친구들과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같은 불편함을 가식 없이 나눌 수 있고, 비밀을 털어놔도 괜찮은 동무가 있다니? 세상에나! 비슷한 고민을 이렇게 편하게 교감할 수 있다니? 멀리 있어도 소중한 나의 안개꽃들아 새삼 그리워진다.


나의 소중한 가족들
, 친구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미워해서 미안해. 원망해서 미안해. 고귀한 나의 삶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들, 내 인생 속의 고귀한 행복들을 찾아 앞으로 전진하며 걷고 또 걷는다. 뛸 수는 없지만 걸을 수 있으매 감사한다.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나의 소중한 눈을 사랑하련다. 안개 속을 헤칠 수 있는 나의 느낌이 남아 있음에 감사한다. 비취색 빛 맑은 하늘과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어 고맙다. 내 코로 예쁜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매 행복하다. 이 행복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기쁘다. 내 손으로 직접 약을 찾아먹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원망과 미움이 사라짐에 감사하다. 선물로 받은 예쁜 안개꽃 다발이 아름답다. 만져보니 더 곱고 예쁘다. 향기를 맡아보니 눈에 파스를 바른 듯 시원해진다. 안개꽃 속에 장미꽃 향이 그윽하게 날 세상 밖으로 이끌어준다. 사랑스러운 안개꽃 속에 장미꽃 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