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1년 제3회 강원도 장애인 생활 수기 공모 작품 - 대상 ②
나 당신 의지해도 될까요? 사랑해도 될까요? / 김순화(강원도시각장애인연합회 원주시지회)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2-01-25 11:57:47

희망과 용기가 넘치는 “2021년 제3회 강원도 장애인 생활 수기 공모전 입상작” 7편을 순위대로 개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김순화(강원도시각장애인연합회 원주시지회)

 

(지난 호에 이어서) 보행에서도 내가 우선이었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기본 상식을 알고 있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시계 방향으로 어떤 음식인지 알려주었고 앞 접시에 덜어 편히 먹게 해주었다. 비정규직이라 봉급도 적은데 부모님께 매달 생활비를 보내는 효자 아들이었다. 그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와 난 자연스럽게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가 잠시만 비밀연애를 하자 해서 그 말을 따랐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왜일까?’ 물음표가 붙었다. 우리의 비밀 연애는 급물살을 탔다. 말로만 듣던 경복궁 돌담길에서 수북이 쌓인 은행잎을 밟으며 저무는 가을 정취에 흠뻑 빠졌다. 용인 에버랜드에서 무서운 기구를 타고는 두려움과 스릴에 비명을 질러가며 누구나 평범하게 즐기는 체험을 그의 도움으로 하고 있었다. 월미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주황빛 노을이 멋지게 펼쳐진 해질녘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이 행복이 내게 조금 더 머물기를 하늘에 걸쳐진 노을에 남겼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더니 우리의 비밀 연애는 짧았다
. 청년들이 알게 되고 새빛맹인선교원직원들이 알게 되고 교인들이 알게 되면서 내가 몰랐던 그의 과거들이 속속히 드러났다. 그는 일 년 전 이곳 사무실 직원이었는데 후원금을 공개하라고 건의했다 잘렸다. 그러고 직원 중 한 아가씨와 결혼 얘기까지 있었다. 그 직원은 사무실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다. 나와도 친근하게 지내는 아가씨였다. 믿었던 그였기에 실망과 절망은 내 심장에 박힌 핑크빛 하트를 산산조각 냈다. 결혼 직전까지 연인이었다는 사무실 직원은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사랑놀이를 하는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그러면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사랑…….’


그는 자기에게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깨진 신뢰는 다시 회복할 수 없었다
. 나는 이별을 통보했고 그와의 짧은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외부인을 차단하며 단단한 보호막을 철갑처럼 두르고 난 혼자가 되었다. 그를 잊기 위한 수단으로 안마 일에 열중했다. 그 당시 안마 일은 수입이 좋았다. 통장에 쌓여가는 돈을 확인할 때마다 경제적 자립은 아픈 마음에 위로가 되었고 홀로서기에 단단한 보탬이 되었다.


이별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그와 마주쳤다
. 우연을 가장한 만남인 듯싶었다. 그는 속이려 한 건 아니었고 내가 그 일을 아는 게 싫어서 알리지 않았다며 여러 각도로 설명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신뢰가 깨진 이상 그 어느 말도 내게는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는 많은 시간 내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다. 교회 청년들도 그를 도왔고 나와 그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여러 일을 만들었다. 그와 그들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은 차갑기만 한 얼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주방에서 식사를 담당하시는 여집사님이 설거지를 돕고 숙소로 올라가려는 나를 붙잡아 세웠다. 그 집사님은 내가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분이셨다. 집사님은 따뜻한 눈빛으로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강 대남 청년 괜찮은 사람이야. 내가 몇 년간 겪어봤는데 인격도 성품도 바른 사람이야. 나를 믿고 다시 한 번 대남 씨에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야.’ 그와 헤어지고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괜찮다는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그를 지원하는 지인들의 응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며칠을 두고 그와 만났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내가 겪은 그는 소문과는 달랐다. 그것이 연극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판단이 안 섰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만 결론짓는 나쁜 습관에 제동이 걸렸다. 나를 이곳에 인도하신 그분에게 사람을 볼 줄 아는 지혜를 달라며 21일 작정 기도를 했다. 그러고는 그를 만났다. 한동안 만나지 않은 그의 얼굴은 핼쑥하게 야위었다. 하지만 커다란 입가에 머문 미소는 여전히 천사였다. ‘우리 처음부터 다시 해요. 비밀은 없어요. 공개적으로 알리고 사귀어요.’


28
살이 되던 10, 햇살이 아름답게 부서지던 어느 가을날 그가 프리지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기며 프러포즈를 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 빨리 다가온 것 같아 마음이 시렸다. ‘그 꽃 받을 수 없어요. 난 당신과 결혼 안 해요.’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청혼을 거절했다. 생각지 못한 거절에 그는 당황하며 거절 이유를 물었다. ‘내 눈 질환은 희소병이에요. 자식에게 유전되는 병증이에요. 그래서 난 결혼할 수 없어요. 내가 겪은 이 아픔을 이 힘듦을 사랑하는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없어요.’


그에게 상처 준다는 것이 미안해서 상처에 아파할 그 마음에 서글픔이 들어 고개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린 눈물만 떨구었다
.


당신에게 솔직해야 했는데 그러면 당신이 떠날까 봐 나 혼자 남아 외로울까 봐 말 못 했어요. 미안해요.’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 좀 줘볼래.’ 물기어린 눈으로 살며시 그를 쳐다보다 손을 내밀었다. 따스한 온기가 마주 잡은 그의 손에서 전해졌다. 그는 내 손을 놓칠세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당신이 힘들 때 내가 당신의 손을 이렇게 잡아주고 내가 힘들 때 당신이 내 손을 이렇게 잡아주면 되잖아.’ 맞잡은 손에서 그의 진심을,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난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에게 물었다. ‘나 당신 의지해도 될까요. 사랑해도 될까요?’ 그는 내 물음에 눈가에 잔주름을 만들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물론이지.’


엄마의 기도 덕분일까
, 시부모님을 비롯해 모든 식구가 나를 가족으로 받아주셨고 그와 나의 사랑을 축복해 주고 응원해 주셨다. 1995110, 양가 가족의 축복과 응원을 받으며 그와 나는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원주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예쁜 두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18년 전 조금 남아있던 시력이 모두 소멸했다. 성장한 두 딸의 모습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마음을 힘들게 할 때 있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복잡한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한 부부의 여행을 준비한다.


11
21, 소래포구는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수와 진의 공연을 선물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널따란 광장에서 수와 진의 노래에 환호하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모금함에도 남편은 정성을 담았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서 난 장난스레 남편에게 물었다
. ‘당신 나 여기에 버리고 가려고 오자 했지.’ 남편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어떻게 알았어.’ 난 쿡쿡쿡 웃으며 강릉에서 물리치료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에 열중인 내 아픈 손가락이 된 작은딸 사랑에게 전화한다. , 아빠가 소래포구에 엄마 버리려고 왔대.’ 작은딸이 웃으며 말한다. ‘버리라고 해. 내가 주워올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