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인의 달 특집 동화] 달려라 맑은강 ②
김백신(아동문학가, 수필가/춘천시문화복지국장)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9-04-02 12:11:16
*본 작품은 장애인인식개선을 위해 동화작가 김백신(현 춘천시문화복지국장) 님이 기부해 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김백신(아동문학가, 수필가/춘천시문화복지국장)

    

*강릉출생

*1997년 서울신문신춘문예 선영이 당선

*저서 : 말썽쟁이 크6

*수상 : 강원아동문학상, 공직자논단상 등 다수

 

밤이 깊어지면 시골은 강물소리로 가득하게 차오르는데 그날은 강물도 슬픔에 잠긴 듯 차분차분 낮아졌습니다. 누군가가 밤새도록 강물을 따라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날 이후 맑은강은 씩씩하게 잘 견뎠습니다. 여간 고집불통이 아닙니다. 계주를 하겠다고 했다면 맑은강은 끝까지 하고 말 아이입니다.

4학년 진영이는 맑은강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그래도 어제는 진영이가 맑은강을 찾아갔었다고 했습니다.

너 진짜 계주 할 거야?”

오른손 주먹을 들어 보이며 진영이는 다짜고짜 맑은강의 앞을 가로 막았었습니다.

그날 보면 될 거 아냐! 내가 달리기를 하는지 아닌지.”

맑은강은 또박또박 대답했습니다.

총연습에도 넌 안 뛰었잖아 임마. 그럼 안 해야 하는 거 아냐?”

진영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맑은강은 눈도 하나 꿈쩍 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이 학교 학생인데 전교생 계주면 내가 뛰는 게 당연하지. 형은 그게 왜 궁금한데?”

맑은강의 목소리는 철심을 박은 듯 당당했습니다. 오히려 진영이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야했습니다.

맑은강도 뭐든지 잘 할 수 있어. 너무 그러지......!”

불만투성이인 진영이의 말을 더 이상은 듣지 못하겠다는 듯 승희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말끝을 흐립니다. 아무래도 계주는 무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 그게 말이 돼?”

말꼬리를 흐린 승희를 향해 진영이가 또 소리쳤습니다.

그 자식 안 돼. 절름발이 자식.”

. 그러지마 걔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잖아.”

승희와 단짝인 선영이와 경은이가 진영이를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순간 진영이도 미안한 듯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맑은강 말이야. 걔가 엎드려 총!(포복)으로 기어가기 얼마나 잘 하는지 알아?”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인태가 어깨를 올려 두 팔을 게처럼 접고 기는 자세로 말했습니다.

?”

엉뚱한 말이었지만 아이들의 눈은 반짝거렸습니다.

얼마 전에 장군 터에서 우리 삼촌하고 내기를 했는데, 맑은강이 이겼다니까! 우리 삼촌 군인이잖아.”

~. 정말?”

아이들이 입을 딱 벌렸습니다.

진짜로 빨라?”

그렇다니까!”

인태가 이번에는 양 어깨로 파바박.......’ 기는 시늉을 하고 있었습니다.

군인아저씨가 뛰는 것 보다 빨라?”

~아니. 그건 아니지. 기기 시합이지,”

으응~~ 난 또.”

눈이 초롱초롱 빛나던 경은이가 약간 실망했다는 듯 움츠렸던 어깨를 풀었습니다.

어유- 이번 계주는 글렀다.”

경은이도 더 이상 전교생 계주에 대하여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왼쪽으로 휙 돌리면서 말했습니다.

푸른산초등학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우동회 마지막 순서에 전교생 계주를 합니다.

한때 학생수가 300명이 넘는 학교였지만 지금은 다른 시골학교처럼 전교생이래야 61명이 전부일 정도로 작은 학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참여하는 경기를 찾다가 전교생 계주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교생 계주에는 아이들 사이에 전해지는 전설이 있습니다. 전교생 계주는 첫 주자가 잘해야 우승을 하게 된다는 전설입니다. 그래서 운동회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전교생 계주의 첫 주자입니다.

달리기는 1학년 아이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키가 가장 작은 1학년 아이가 누구인지가 아이들의 관심거리입니다. 달리기는 해봐야 알지만 누가 달리기를 잘할지 점쳐보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올 해는 사정이 다릅니다. 아무도 경기 결과를 예상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맑은강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이 엉켜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생이 61. 우선 짝이 맞지 않습니다. 이럴 땐 맑은강이 계주에서 빠져 주어야 옳다는 것입니다.

춰주자 앞으로.......”

선생님의 말이 마이크를 통하여 나오자 진영이와 인태의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춰주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진영이는 앞에 선 친구의 어깨를 짚고 발꿈치를 번쩍 들었습니다. 순간, 대열의 한 쪽에서 몸을 기우뚱거리며 누군가가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모자가 백색이었습니다.

. 진짜다!”

인태와 진영이가 동시에 말했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던 일입니다. 그러나 ~~’하고 땅을 한 번 내려다보았을 뿐 청팀의 첫 주자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발뒤꿈치를 번쩍 들었습니다.

?”

개선문이 있는 운동장의 왼쪽에서 흰색 운동복을 입은 1학년 담임선생님이 청색 바통을 흔들며 걸어 나왔습니다. 키가 작아 애기선생님으로 통하는 김영숙 선생님은 키를 늘리기라도 하려는 듯 뒤꿈치를 들고 걸으며 파란색 바통을 높이 흔들어 보였습니다.

~~”

아이들이 환성을 지르는 사이 체육선생님의 말씀이 계속되었습니다.

백팀의 첫 주자는 1학년 맑은강. 청팀은 김영숙 선생님이십니다. 푸른산초등학교 전교생이 61명이기 때문에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청팀을 대신해서 뛰겠습니다.”

우와~~”

보시다시피 백팀의 첫 주자는 몸이 좀 불편합니다. 그래서 20m만 달리게 됩니다. 첫 주자는 본부석 앞쪽에 있는 출발선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애기선생님과 맑은강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나란히,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본부석 앞 쪽에 가느다란 실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습니다. 2번 주자는 운동장 라인이 곡선으로 변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

맑은강과 애기선생님이 출발선으로 이동하는 동안 본부석에서는 끊임없는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걸어 나와 출발선에 도착한 맑은강은 준비!’ 라는 구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허리를 굽히며 준비 자세를 취했습니다. 완벽한 준비 자세입니다. 오히려 선생님이 맑은강을 따라 준비 자세를 취해야 할지 어쩔지 당황하셨습니다.

준비!”

드디어 화약총을 든 6학년 선생님이 오른팔을 높이 드셨습니다. 그제야 애기선생님은 양팔을 벌려 출발선 아래에 있는 왼발 옆을 짚고 오른쪽 발을 뒤로 길게 뻗으며 준비 자세를 취합니다. 운동장이 또 한 번 숨을 죽였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화약총을 든 선생님이 하늘을 향하고 있던 오른팔을 약간 구부렸다 펴며 곧게 세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