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애인의 달 특집 동화] 달려라 맑은강 ①
김백신(아동문학가, 수필가/춘천시문화복지국장)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9-03-26 11:02:09

*본 작품은 장애인인식개선을 위해 동화작가 김백신(현 춘천시문화복지국장) 님이 기부해 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김백신(아동문학가, 수필가/춘천시문화복지국장)

    

*강릉출생

*1997년 서울신문신춘문예 선영이 당선

*저서 : 말썽쟁이 크6

*수상 : 강원아동문학상, 공직자논단상 등 다수

 

지금부터 전교생 계주가 있겠습니다.”

~~”

마이크를 통해 울려나오는 체육선생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입니다.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며 ~’하고 소리쳤습니다. 흙장난을 하고 있던 친구도 벌떡 일어나며 ~’합니다.

만세를 부르는 친구들의 손바닥에서는 뽀얀 먼지가 눈가루처럼 흩어집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깡충깡충 제자리 뛰기를 하며 손뼉을 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앞산 장군봉도 아이들의 함성을 따라 ~~’ 소리쳤고, 마침 운동장 위를 지나가던 흰 구름도 덩달아 ~’하고 회오리를 쳤습니다. 세상에는 ~’라는 말 밖에 없는 것처럼 더 이상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체육선생님의 말씀도 와웅와웅~~’으로 들릴 정도입니다.

자 여러분! ~삐익~~”

.

담임선생님이 호각을 불며 대열 정리하셨습니다. ‘~’ 하던 아이들의 고함소리도 호각소리를 따라 조금씩 '. '이라는 구령소리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

.

.

.

아이들은 잘 훈련된 병정처럼 팔을 앞뒤로 높이높이 흔들었습니다. 응원석에서 나온 아이들은 동그란 운동장을 중심으로 두 개의 무리로 흩어집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친구들의 모두 다 싱글벙글합니다. 운동회를 구경나온 어른들은 입이 넓적해지더니 금방 볼이 통통해졌습니다.

"~~"

대열이 완성되고 나자, 모두 제자리에 앉으라는 선생님의 호각이 울렸을 때입니다. 4학년인 진영이가 옆에 서 있던 인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습니다.

인수 형은 청군이랬지?”

백군인 진영이는 인수 형이 청군인 것이 못내 아쉬운 듯 또 묻습니다. 벌써 세 번째입니다.

그렇다니까!”

에구!”

진영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듯 말했습니다. ‘에구라는 말 속에는 백군이 우승하기는 틀렸구나!’ 이런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태의 얼굴도 실망으로 가득합니다. 진영이와 인태는 모두 백군이기 때문입니다.

! 근데 더 웃긴 건......”

인태는 아까 했던 말을 또 꺼냈습니다. 소아마비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1학년 맑은강이라는 아이가 백군이라는 것, 그 애가 전교생계주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소문 말입니다. 바로 승희의 사촌 동생입니다. 그 애는 얌전한 승희와는 딴판입니다.

. 최승희! 너 동생 너무한 거 아냐?”

진영이가 괜한 승희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승희는 못들은 척합니다. 사촌 동생인 맑은강은 고집이 얼마나 센지 승희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인수 형이라도 백군이면 좋은데……."

"맞아. 형만 우리 편이면 운동장 한 바퀴도 따라 잡을 수 있을 텐데……."인수도 거들었습니다.

"! 아무리 달리기 선수라도 한 바퀴는 아니다! 마지막 주자가 한 바퀴를 뛰는데 그게 말이 되냐?"

가만히 듣고 있던 승희가 진영이를 흘겨보며 말했습니다.

"맑은강만 아니어도 이렇지는 않아. 나쁜 녀석....... "

진영이는 여전히 맑은강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맑은강이 승희네 집으로 오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습니다. 6개월 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작은아빠는 아직도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그래서 작은엄마는 새 직장을 나가게 되었고, 어린 맑은강은 큰댁인 승희네 집에 맡겨졌습니다.

맑은강이 오던 날. 그날은 유난히도 많은 별들이 종소리를 낼 것처럼 반짝거리는 날이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멍석을 깔고 가족 모두가 나와 앉았지만 누구하나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기만 극성스럽게 앵앵거릴 뿐입니다. 아빠가 뒤꼍으로 가서는 마른 약쑥을 한 타래 들고 나왔습니다.

약쑥에 불을 붙이자 불꽃이 한꺼번에 확~하고 피어올랐습니다. 불꽃은 금세 '타다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대궁으로 옮겨 붙었고 아빠는 장화를 신은 발로 재빨리 대궁으로 옮겨 붙은 불을 꾹꾹 밟아주었습니다. 밟힌 자리에서는 뭉게구름처럼 하얀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릅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승희네 가족은 짙은 연기를 피하려고 얼굴을 좌우로 돌려보거나 눈을 비비면서 숨고르기를 해야 했습니다. 콜록콜록 기침 소리도 들렸지만 그 사이에 모기는 모두 아웃! 앞마당은 짙은 쑥 향기로 가득하게 메워졌습니다.

맑은강 너 여기 앉아라. 곧 괜찮을 거다."

아빠가 맑은강을 모깃불 가까이로 끌어당기며 말했습니다.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맑은강은 그냥 아빠가 하라는 대로 끌려 나올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맑은강이 승희네 집에 도착한 후 지금까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나 봅니다. 걸음걸이는 금방이라도 쓸러질 것처럼 비틀거렸습니다.

작은엄마는 벌써 몇 번째 뒷마당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릅니다. 승희는 알고 있습니다. 작은엄마는 뒷마당에서 몰래몰래 울고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 별 좀 봐. 부산의 것이 다 여기 모여 왔구나.”

한참 만에 하늘에서 눈을 뗀 작은엄마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맑은강은 피곤한지 멍석위에서 아주 조그맣게 코를 골고 있습니다.

맑은강이 당분간 여기 사는 거 알지?”

“......”

작은엄마의 말에 승희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저애가 처음으로 엄마아빠를 떨어져 사는 거니까 힘들어 할 거야. 그렇지만 모르는 체 해라. 맑은강이 도와달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

이제 곧 학교에 입학하면 모든 걸 다 혼자 해야 되잖니? 맑은강에게 우리 집의 상황을 잘 말해 주긴 했는데 얼마나 이해할지 모르겠다. 진작부터 혼자 사는 법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맑은강이 아까 울었어요.”

승희가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습니다.

알고 있어

작은엄마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말인가 더하려다 말고 작은 엄마는 벌떡 일어나 마당 끝 어둠 속으로 뛰어나가셨습니다.

강원장애인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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