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3주년 기념 장애인 및 가족 문학작품] 신경혜-엄마의 옷장
대상(수필/인제)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21-01-05 11:19:10

 

▲신경혜(인제)

고향 집엔 대학 진학 후 자주 내려오지 않는 나의 책상과 독립 후 주말마다 집에 내려오는 큰오빠의 침대 그리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동생의 화장대가 지나 온 세월을 간직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십 년간 일곱 식구의 손길이 닿았던 가구들, 서로 소유권을 분쟁하던 물건들이 모두가 독립한 지금은 파도가 남기고 간 바다 위 빈 조개껍데기처럼 그저 놓인 자리만 지키고 있다.


내 방 한쪽에 자리한
-한 때 내 것이었던- 옷장도 그런 가구 중 하나이다. 새하얀 여름 교복 블라우스와 두툼한 겨울 교복 재킷 그리고 몇 벌 되지 않은 내 옷들이 걸린 옷장은 내겐 작은 사계절이었다. 나는 계절마다 나의 옷장 속 옷들을 두께에 따라, 색상에 따라, 상하의에 따라 나름의 순서대로 진열했고, 그때마다 내가 디자이너이자 모델인 작은 패션쇼를 열었다. 성장하면서 나의 옷장은 옷을 걸어두는 기능뿐 아니라 꽤 여러 가지 역할을 했는데, 비상금은 물론이고 이성 친구와의 비밀 편지를 보관하거나 엄마가 싫어하는 짧은 치마나 꽉 끼는 티셔츠를 숨겨두기도 했다. 나의 옷장 안에는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었고 나의 성장도 있었다.


하지만 식구가 많은 집에서 개인의 공간이란 언제든 침해받을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 형제들은 빈틈만 보이면 서로의 공간을 공격하고 탈취한다. 그곳엔 언제나 재미 그 이상의 비밀과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다자녀 가정의 자녀들은 태어날 때 자신의 몫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본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동시에 형제의 것을 쟁취하고자 하는 욕망도 지니고 태어나기에 언제나 소유권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내 공간이라 믿었던 옷장 역시 동생의 옷을 보관한다는 엄마에 의해, 무료함을 달래고자 내 비밀을 엿보려는 형제들에 의해 손쉽게 침략당했으며 이에 대한 억울함을 풀어보려 여지 없이 소유권 분쟁의 중심으로 들어가 투쟁하지만 돌아오는 건 꾸중과 눈물뿐이었다.


사실 이런 화목과 반목의 형제 관계는 온전한 내 것을 지니게 되는 독립의 시기를 전후로 잦아드는데
, 나 역시 독립으로 진정한 의미의 내 옷장이 생긴 이후 고향 집 옷장은 더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가끔 고향 집에 내려갈 때 입고 온 옷을 걸어두는 가구 혹은 내 짐을 보관해 두는 창고가 된 옷장엔 내가 걸어 두었던 계절과 성장은 더 이상 쓰임이 없는 교복처럼 최소한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겐 각자의 옷장이 있었다. 아빠도 언니도 오빠도 나도 동생도 옷장이 있었다. 각자의 책상과 침대는 없었지만, 옷장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옷장이 없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다섯 남매 모두가 독립한 고향 집의 옷장엔 내려갈 때마다 엄마의 옷이 걸려 있었다
. 우리는 개수를 알 수 있을 만큼 적은 엄마의 옷들이 비어 있던 옷장을 하나둘 채우는 걸 보며 우리만큼 필요했을 엄마의 공간 부재를 뒤늦게 미안해했다. 엄마의 옷장은 우리와 달리 개방적이었기에 언제든 열어 볼 수 있었다. 천천히 옷장을 들여다보면 익숙한 옷들이 눈을 스쳤다. 내가 입던 빛바랜 외투, 언니가 버리려고 둔 목이 늘어난 티, 엄마의 어깨보다 반 뼘이나 큰 남동생의 패딩 조끼가 나름의 순서로 엄마의 공간을 채웠다.


집에 내려간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새로운 옷들과 함께 우리를 맞았다
. 그 옷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옷걸이에 걸리지 못한 채 시장 가판에 떨이처럼 진열된 옷들이었다. 검은 비닐봉투에 담겨 온 옷들은 고이 엄마의 옷장에 걸렸고, 우리가 올 때마다 차례대로 꺼내져 언제, 어떻게, 어디서, 왜 이 옷을 구매했는지 소개되었다. 내겐 분명 반품교환 불가 딱지가 붙여진 옷인데 엄마의 눈엔 고급 상표가 붙여진 옷들이 되었다.


자연스레 오일마다 열리는 시장 옷 가게를 향하는 엄마의 목발엔 생기가 돋았다
.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갈 법도 했지만 좀 더 나은 흥정을 위해 엄마는 조금은 위태롭게, 조금은 용감하게 목발을 짚으며 나아갔다. 남들보다 한참 느린 발걸음엔 오 남매를 위한 저녁 염려나 아빠 도시락 반찬거리 걱정에 대한 무게는 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옷장을 싱그러운 봄으로, 향긋한 여름으로, 은은한 가을로, 짙은 무게의 겨울로 채우려는 한 여자의 기대와 설렘이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자랑스럽게 옷장을 열어
신상 아기들을 자랑하던 엄마의 손에 어느 순간 주춤거림이 보였을 때는 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평소 엄마는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했는데, 건강하게 걷지 못하는 엄마의 다리가 여름보다 겨울에 더 잘 숨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의 옷장이 생긴 이후 여름을 꽤 기다리는 눈치를 보냈는데, 비교적 옷값이 싼 여름에 같은 가격으로 겨울보다 더 많은 옷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옷장 앞에 가만히 앉아 셈을 하는 엄마의 모습에 문득문득 나의 모습이 어렸다.


엄마가 옷장 속에 비밀과 이야기를 숨겨뒀다는 걸 알았을 때는 가을의 마중에 여름 한낮의 더위가 고개를 숙일 때쯤이었다
. 그때쯤 엄마는 우리가 내려가도 이전처럼 새 옷 자랑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런 엄마를 보며 서늘해진 바람에 열기를 빼앗긴 여름처럼 옷장을 채우는 열정이 식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 평소처럼 입고 온 옷을 걸어 두려 옷장을 연 나는 처음 본 옷을 발견했다. ‘누구 옷이지?’ 생각만 했던 물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짧은 스커트 치마 여러 개가 옷장에 걸려 있었다.


물음 아닌 나의 물음에 처음 엄마의 표정은
당황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아니 언젠가 내가 지어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은 학교 축제에 나가기 위해 엄마 몰래 사서 옷장에 숨겨둔 짧은 치마가 여동생에 의해 적발되었을 때 내가 지었던 표정이다. 그건 이 짧은 스커트가 엄마의 옷이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옷은 늘 긴 바지와 긴 치마가 전부였다
.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로 온전히 걷기 힘들었던 엄마는 종아리가 드러난 치마를 입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의 다름을 평생 두껍고 긴 치마 속에 감춰뒀고 나는 그걸 엄마의 취향으로 못 박아 두었다. 태연히 걸려 있던 엄마의 스커트와 내 편견이 마주하자, 엄마가 방금 지었던 당황의 표정이 이내 내 얼굴에 새겨졌다.


나는 소란스럽게 옷장에 있는 짧은 스커트를 꺼내 엄마에게 입혀 보았다
. 처음 엄마는 조금 부끄러워했지만 이내 몇 번 해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스커트를 입어 보였다. 어린 날의 나처럼 당신이 디자이너이자 모델인 작은 패션쇼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마 엄마는 어떤 편견도 자리하지 않는 곳에서 이 옷들을 입어 봤을 것이다. 목발을 짚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걸으며 하이힐을 신은 모습을, 워커를 신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평생 입어보지 못한 짧은 스커트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더 어색한 듯 엄마의 웃음에 부끄러움이 묻어 나온다
. 그 웃음 끝을 잡고 나 역시 엄마의 상상에 초대된다. 백화점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구경하며 서로에게 어울리는 치마를 골라 준다. 백화점을 나온 엄마는 목발이 아닌 내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는다. 웬일인지 눈높이가 맞다 했더니 엄마가 하이힐을 신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우리의 웃음에 묻힐 듯 말 듯 바닥을 두드린다.


상상하니 어느새 눈에 뜨거운 물방울이 맺힌다
. 다행히 열어 둔 창문 사이로 해가 진 늦여름 저녁 바람이 가을 공기를 불어 넣는다. 눈물을 훔치자 바람을 타고 오는 계절이 어느새 엄마의 옷장에 자리를 잡았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울 거라는 예보가 하나둘 들린다. 그래도 다시 유난스러운 봄은 오고, 여름을 맞고 가을을 기다리겠지. 엄마가 맞이하는 모든 계절이 엄마의 옷장에 차곡히 쌓이길 바란다. 깨끗하고 단정하게 걸릴 엄마의 사계절이 벌써 기다려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