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복지단상] 정의사회 출발지는 각각의 개인
정직과 공정성 앞세운 지도자 선별능력 길러야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8-09-04 11:20:47


▲ 본지 지소현 공동대표

누구나 평생 동안 수많은 배신감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시작하여 멀게는 소속된 집단이나 국가의 제도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마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것처럼, 신뢰가 있는 곳이라면 늘 존재하는 배신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개인이나 사회의 질은 달라진다.


우선 개인적으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절절하게 아파하고 분노한다
. 그러나 기대치가 빗나간 사회적 배신을 당하면 아픔이 실망감으로 변질되거나 아예 그러려니 포기할 때가 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손톱 밑 가시는 알아도 뱃속에 악성 종양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가 생명에 치명타를 입는 것처럼 감각 없는 사회적 배신행위를 그냥 넘어가면 국가라는 무형의 인격체가 병들어 내가 살기 힘들어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간접적 악영향을 미치는 배신행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예를 들면 불법선거자금에 연루된 정치인, 후원금을 횡령한 복지단체의 장, 시기 질투로 살아가면서 자기 홍보용 봉사활동에만 급급한 사람, 등등

이로 인해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들 사이에 벽이 생기고 불신풍조가 조성되지 않았는가.

 

어느 시대, 어느 집단이든 나갈 바를 제시하는 지도자(leader) 계층이 있으며 그들의 철학에 따라 새로운 역사가 창조된다. 다행히도 민주주의 지도층은 시민의 의사가 반영된 경쟁과 검증을 통해서 세워진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지도자의 자질이다
. 지도자의 적합성은 특출한 지식인도 아니요 부를 지닌 사람도 아니다. 만일 지식인이 자기 분야 외에는 사회 전체 흐름에 관심조차 없다면 그는 그저 전문가 일뿐이다. 그리고 부를 소유한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자신과 무관하다고 외면한다면 그냥 부자일 뿐이다. 그래서 진정 우리가 앞장세울 조건은 세속적 가치에 초연함은 물론 정직하고 공정하며 이웃에 대한 동정심이다.


과거 로마에서는 대접받는 명예
(Noblesse)만큼 의무(Oblige)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귀족들만의 가훈(家訓)이었다. 그들은 높은 신분에 맞는 도덕적 의무를 원칙으로 삼아 솔선하여 전쟁에 참여하고 이웃에 기부하였다.


우리가 이러한 사람을 선별해낼 수 있는 능력은 세상사에 깨어있을 때 가능하다
.


즉 허울 좋은 외형에 속아 많은 것을 기대했다가 배신을 당하고도 슬그머니 포기하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
, 먹고사는 일에 전전긍긍하던 속 좁은 식견에서 벗어나 올바른 지도자에게 우리의 권한이 위임되도록 넓은 안목을 기르자. 우리들의 건전한 가치관과 결정이 정의사회를 구성하는 절대적 요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