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의 《빛의 과거》를 읽고
최우수작/임종숙(홍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9-12-17 11:03:17

본지는 독서인구 저변확대를 위해 “2019년 강원점자도서관 독후감 수상작” 3편을 순차적으로 게재하기로 강원도시각장애인협회와 협의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최우수작

은희경의 빛의 과거를 읽고

 

임종숙(홍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

 

빛의 과거책은 은희경이라는 필터를 거쳐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은희경의 장편소설 빛의 과거. 태연한 인생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오랫동안 쓰고 고쳐 쓴 작품이라고 한다.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라는 낯선 공간에서 마주친 첫 다름과 섞임의 세계를 그려냈다
. 기숙사 룸메이트들을 통해 다양하며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제시하고 1970년대의 문화와 시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2017
, 중년 여성 김유경은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으며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묘사된 김희진의 소설 속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김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 기숙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룸메이트다. 타의에 의해 임의로 배정된 네 명이 한방을 쓰는데, 임의의 가벼움에 비해 서로 주고받는 영향은 터무니없이 크다.


국문과
1학년 김유경의 322호 룸메이트는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다. 최성옥과 절친한 송선미의 방인 417호 사람들(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종종 모이곤 한다.


1977
년의 이야기는 3월 신입생 환영회, 봄의 첫 미팅과 축제, 가을의 오픈하우스 행사 등 주요한 사건 위주로 진행된다. 김유경의 서사가 굵직하게 이어지는 사이사이, 322호와 417호의 룸메이트인 일곱여성들의 에피소드도 다채롭게 전개된다.


김유경은 말더듬증이라는 약점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내리누르며
, 말과 행동이 필요한 순간 입을 다문다. 회피를 방어의 수단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세상의 어중간한 어디쯤에 위치시키려 한다. 한편 누군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남을 끌어내려 항상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그와 비슷하지만 남의 눈이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이 중요한 양애란이 그렇다.


지향점과 실제의 삶에 괴리가 심한 사람도 있다
. 최성옥처럼 자신이 선택한 남성에 의해 그 괴리가 발생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교정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매사 주요하게 지적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발을 헛디뎌버리는 곽주아 같은 경우도 있다. 그들은 치졸하고 나이브하며, 소탈하기도 섬세하기도 하다. 선량하고도 얄미우며 까칠하면서도 유약하다.


마치 오늘의 우리처럼
.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하여 담담하게 토로하는 내밀한 문장들은, 삶에 놓인 인간으로서 품는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즉 김유경은 뒤늦게 읽게 된 그녀의 책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으며, 자신의 기억과 그녀의 기억 중 무엇이 맞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40년이란 시간이 지나 그 과거를 돌아본다 한들 그 기억들이 힘이 있는 것일까?


서로를 오해하고 편견으로 바라봤던 그 시절을 지나 2017년까지 둘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 만났던 이였지만 그때는 오히려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던 그들이 지금은 그 다름을 인정하며 바라보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
,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기억으로 살아가고 그 기억들이 나를 위주로 돌아가고 그렇게 기억된 채 살아간다 해도 빛나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도 어두웠던 곳에 갇혀버리는 것도 지금 현재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그 순간들을 지나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을 들으면서 나의 기억이 그때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이란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기 마련인데 나 자신은 이 판단의 기억으로 그때 그 모든 상황을 뇌에 저장해 버린다. 그래서 한 공간 한 시대에 같이 있던 사람도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 후일에 같은 상황을 기억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 기억이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 타인이 생각하는 기억도 그 자신의 입장에서는 정확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 내 기억만 정확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고 그 사람을 원망하게 될 수도 있다.


40
대에 시각장애인이 되어 옛날의 기억들을 생각하면 하나의 예쁘고 행복한 기억이 된다. 시각장애로 활동 지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기억들이 만들어지는 것과 내 스스로 보고 느끼고 각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모든 기억들을 만지고 듣는 것에 의존해 기억한다.


그래서 한 가지 예로 상대방이 목소리가 좋고 밝으면 얼굴이 예쁘고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다 한다
. 그러나 활동지원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대에 대해 물어보면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찬 표정이라고 말해 줄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안 보이는 것이 죄다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장애를 가져서 그런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과 보였을 때의 기억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의 기억이 달라도 상대방의 기억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 여유가 생기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행복이라는 보너스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