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이 아닌 느림의 시간으로(김은경/뇌병변/강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2회 강원도 장애인 생활 수기 공모전 행복상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9-06-18 11:28:26

새천년 흥분과 세기말 종말의 불안감이 뒤엉켰던 1999년 신문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기자는 신이 내게 준 사명이라 믿고 진정 열심히 일했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기자된 지 4. 발바닥 땀나도록 종일 뛰어다녔고 밤새 원고더미에 쌓여있던 2003. 나는 과로로 쓰러져 뇌출혈이 됐고 뇌수술 후 1급 장애인이 됐다. 꽃이라 부르고 싶은 내 나이 딱 스물일곱. 다시 생각해봐도 가슴 먹먹해진다. 뇌수술 후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6개월간 식물인간이었다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고 하니 세상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나보다.


그러나 의식회복이 나에게 축복만은 아니었다
. 너무나 달라진 내 몸을 받아들이기에 버거웠다. 왼쪽은 움직일 수 없으니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청천벽력 같은 장애 1급 판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걷기는커녕 먹고, 자고, 눕고, 앉고 하는 일상생활도 담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만큼 버거웠다.


몸이 변한 것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였다
. 나 김은경은 그대로인데 세상은 내 존재보다 내가 의지한 휠체어를 먼저보고 판단하기 급급했다.


내가 기자를 하던 비장애였을 때는 굽신 거리던 사람들이 장애인이 된 이후는 무시하기일 수였다
.


햇살 가득한 세상은 그대로인데 왜나만 변한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 매일 죽음을 생각했고 흐르는 눈물 속에 잠들곤 했다. 그러나 1급 장애인에게는 죽음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매일 기도했다 암에 걸려 죽게 해 주세요’, ‘교통사고 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내 희망은 이뤄지지 안았고 죽지도 못한다면 걸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10년 넘게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지팡이까지가 한계였다. 그마저도 걷는 연습 도중 넘어져 머리가 찢어진 뒤로는 지팡이마저 빼앗겨버렸다.

  
그리고 그날 알았다. 뇌를 너무 많이 다쳐 다시 걸을 수 없고,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뒤로는 걷는 재활이 아닌 자립을 위한 재활에 더 중심을 뒀다. 다행이도 왼발은 내 맘대로 안됐지만 왼손은 다리와 달리 자유로웠다. 뭐라도 내게 남은 자유가 있다는 것이 행복이었을까?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니 직업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서 취직을 결심했지만 막막했다. 마침내 다친 지 8년 만인 2011, 강릉시청 장애인행정도우미로 취직해 강릉 교1동사무소에서 일하게 됐다. 다시 내 인생에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니. 사회에 쓰임새가 있다니. 밤새 뒤척이다가 출근하는 아침을 맞이한 그 날. 얼굴에 예쁜 화장을 할 수 있다는 것에조차 감사해했다.


하지만 그 일도 기한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이었다. 또 처음에는 미달이었던 행정도우미가 최저임금 상승으로 월급여가 백만원이 넘자 경쟁률이 엄청 치열해서 2년 계약기간이 끝난 뒤 한참동안 일을 할 수 없었다. 2012년 계약기간만료 후 8년이지나 작년 강릉시 장애인행정도우미에 합격해 2019년 현재 강릉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다시 근무 중이다. 사막의 모래를 뒤져도 자꾸 파다보면 샘이 나온다고 한다. 나도 그 마음으로 열심히 취업준비를 한 덕분에 다시 일할 수 있는 행복을 얻었나보다.


나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 손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다시 글을 쓴다
. 그 덕분인지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연인관계로 발전해 결혼을 꿈꾸고 있다. 물론 부모님의 엄청난 반대로 당장결혼은 어렵겠지만 언젠가 다시 그 꿈이 꽃처럼 열매처럼 영글어 오를 날 있지 않겠는가?


한때 장애인이 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죽음을 기도했던 때가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 장애인이면 어떤가? 휠체어타고 있으면 어떠한가? 한 인간으로 사막의 샘을 뒤지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뒤진다면 못할 일이 또 뭐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지어 엄청난 차이로 구별 짓는다
. 물론차이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 차이는 다름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 장애는 불가능이 아니다. 물론 절대 불가능한일도 있지만조금만 기다려주고 함께 한다면 불가능은 줄어들 것이다. 내가 뜻하지 않게 장애인이 돼 살아보니 장애는 절대불가능이 아니고 조금 느림이고 조금 불편일 뿐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느림보의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내일을 준비 중이다. 나는 불가능은 없다 조금 느릴 뿐이다. 그리고 내겐 아직 자유로운 손과 맑은 영혼이 있다.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계속해서 도전하고 노력해서 불공정하고 편견 가득한 이 사회 속에 떳떳한 장애인으로 살아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