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인이다(김용호/뇌병변)
제2회 강원도 장애인 생활 수기 공모전 행복상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9-06-11 11:27:10


▲ 김용호 씨(사진 왼쪽)

저는 1988110일 태어난 뇌병변 1급 장애인입니다. 부장애로 지적장애도 있습니다.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두 번 들어갔다 왔고.. 3달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울기만 했다고 어머니께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아산병원에 갔더니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판정받았습니다. 어린시절에는 부모님께서 일 다니시느라 거의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고.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까지 굶거나 외로워서 울기도 하고 기어서 밖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경제적 부담으로 저를 돌봐주기 힘들어지자 지인의 소개로 아홉살에 춘천에 있는 강원재활원에 입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활원에 들어가자 생활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적응이 어려웠는지 용변 처리도 제대로 못하고 생활교사에게 혼도 많이 나고, 혼나기 싫어서 변을 보고도 변을 안 봤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전 어린마음에 혼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설생활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고 싶어 학교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춘천 동원학교(특수학교) 초등학교로 뒤늦은 10살 때 1학년으로 입학하여 2년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후 복용하는 약이 있어서 원주기독병원에 재활의학과 약이 제 장애상태에 적합했기에 원주에 있는 천사들의 집으로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학교는 원주청원학교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3학년까지 다녔고 그 후 학교에 다니기 어려워지자 일부러 선생님이 시설까지 파견을 오셔서 학교 공부는 했지만 정규 교육과정은 다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곳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동해에 있는 생활시설에도 갔지만 그곳도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인권침해도 많이 당했고 11년 동안 너무 외로웠고 힘들었습니다. 결국 이곳도 적응이 어려워 퇴소하고 동해요양원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또한 사무국장이 시설 거주인에게 입소 전 약속했던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단체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는 건 맞지만. 저는 제 권리를 찾고 싶어서 이의제기도 하고 설득도 해봤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버티기 힘들어 퇴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따라서 저는 바로 고향으로 내려와서 할머니와 지내다가 속초에 있는 금강주간보호소&금강생활 공동체에 또다시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원장님이 어머니 같으셔서 저에게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습니다.

 

원장님의 추천으로 뇌병변장애인 전용 스포츠인 보치아를 시작하면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강원도 보치아 대표팀 감독이셨던 권철현 감독님을 만나게 되어 주 5일 동안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가끔 대회도 나가서 잘 하지는 못했지만 강원도 장애인 체육 대회 금메달과 전국대회 동메달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훈련 중에 감독님이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따로 저를 불러 용호야 인제에서 보치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시설을 나와서 함께 자립하지 않을래?’ 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감독님의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고 고민도 많았습니다. 지금껏 시설에서 보호라는 간섭아래, 자기결정권을 포기한 상태로 긴 삶을 살아왔었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의식주 해결부터 금전관리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고, 큰 장벽으로 제게 느껴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도 많이 반대 하셨습니다. 길고 긴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부모님을 설득하여 드디어 자립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15년 만에 자립을 성공하게 되어 재미도 있었고 행복했습니다. 자립생활 하면서 앞으로 아파트를 얻어 혼자 살아갈 수 있게 조금씩 적금을 들었습니다. 5년간 돈을 모아서 지금은 조그마한 월세 아파트로 집을 옮겨 자립생활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평소생활은 활동지원을 받아서 가사와 외출 시 이동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속초아우름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다니면서 부족했던 학령기를 채우기 위해 야학에서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시설에 나와서 사회생활을 처음 해 본 것이라 많이 낯설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센터에 다니면서 알게 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불합리함에 맞서 기자회견도 참여해보고 장애인 정책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사람인데 등급을 판정하고 장애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등급별로 각종 지원과 복지혜택도 다르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서울 광화문에 가서 장애인등급폐지&부양의무제폐지 서명운동도 하면서 제 자신도 점점 인권운동가로서 자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우리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불평불만만 했던 제가 이러한 활동들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현재는 저의 역량강화를 위해 장애인인권과 사회복지에 관련된 자격증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점입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통해 지금도 시설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분들과, 사회에서 비장애인의 시선이 무서워 집밖으로 나오길 두려워하는 장애인당사자 동료들에게 모범이 되어 자립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