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살며 사랑하며] 나 이 세상 떠나는 날에는
김동순 수필가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8-06-26 10:33:16


▲ 김동순 수필가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 인간의 장기를 바꾸고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지만 수명만 연장시킬 뿐이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생명연장을 위한 다양한 시술과 처치를 받으며 남은 대부분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낸다.


우리나라도
201824일에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었다. 의사가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환자가 연명치료를 받고 있다고 판단할 때 환자의 의향을 존중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에 의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판단을 받은 환자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을 중단할 수 있다. 이 법이 시행 된지 100여일 만에 7000여명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에 이르는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이런 죽음이 안 오리라 장담 못한다. 죽음을 앞둔 모든 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제도인가. 지인에게서 이 제도를 전해 듣고 두려움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 기관에 접수하고 나니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숙제 하나를 푼 것 같아 마음이 가볍다.


지금까지 죽음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 죽음이 남의 일처럼 느껴졌고 한 없이 유보하거나 피하고 싶었다.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은 죽음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문제이고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지의 대한 결정이다. 나이고개가 높아지다 보니 언젠가 맞닥뜨릴 나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 축복이 되려면 아름다운 마무리를 미리 조금씩 준비해야겠다.


몇 일전 신문에서 호주
104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박사님의 죽음을 보면서 많은 걸 생각했다. 그는 평소 앓던 병도 없었다. 건강이 나빠지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지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이 진짜 슬픈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구달박사님은 치사약이 들어간 정맥 주사기의 밸브를 스스로 열고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삶의 존엄성을 위한 선택이란 면에서 볼 때 의사의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 흔치 않은 죽음을 보면서 숙연해지고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구본무
LG그룹회장도 경기도 곤지암 화담숲인근 소나무 아래 영원히 잠들었다. 풍수 좋은 널찍한 명당에 번뜻하게 봉분과 비석을 세워도 별스럽게 보이지 않았을 구 회장은 땅 한 평 차지하지 않고 나무아래에서 잠들었다. 장례도 한국 재계의 큰 별 답지 않게 3일간의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간소한 장례문화와 수목 장은 앞으로 국내 장묘문화개선에 큰 영양을 남길 것이다.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나무로 돌아간 구 회장의 향기가 각박한 우리 사회에 영원히 남기를 바란다. 투박함 속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을 감히 누가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명이 짧다는 내 운명을 움켜쥐고 칠십년을 잘도 피해 다녔다. 요즘 잃고 싶지 않은 분들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 분들을 보내면서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존재란 것에 한 동안 무기력해지고 우울했다.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분도 있는가하면 가족을 힘들게 하는 분도 있어 더 안타까웠다.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게 죽음이다. 그래서 인생에 정답이 없듯 죽음에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 한 일이 두 아들의 엄마가 된 것이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부탁을 했다. 아들아! 엄마가 옛날 같으면 산에 누워 있을 몸인데 세월이 좋아 꽃중년 타령을 하면서 살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단다. 우리 부모님 건강히 사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잠자듯 돌아가시게 해 달라고 늘 마음속으로 빌면서 살아라. 큰아들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화를 벌컥 내면서 엄마는 부탁할 일이 그렇게 없어서 천하에 불효자를 만드세요.” 아들아! 아니란다. 네 엄마의 부탁이 머지않아 정답이라는 것을 너희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내 노년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죽을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날이 더 짧다. 앞으로의 삶은 덤이라 생각하고 욕심과 집착을 더 내려놓아야겠다. 조금 욕심을 조금 부린다면 내 죽음이 태어난 날보다 죽는 날이 더 나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