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 (행복상)
[강원도 장애인 자립생활 수기 수상작 소개 ⑤] 임한울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8-12-18 13:41:27




역사는 만남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한 참 예민했던 중학교 3학년 때 강원도상담복지센터에서 임향숙 선생님과 만남은 아주 특별했다. 처음에는 멘토 · 멘티 관계를 거절했다. 이유 없이 그냥 싫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싫다고 하는 나의 의사표현을 존중하고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내가 부르면 달려오겠다고 했다. 엄마가 없이 혼자 있던 밤에는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왔다.


내가 장구와 창을 배우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 선생님은 장구와 창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던 나는 수줍은 듯 사양했다. 그런데도 자꾸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졸랐다.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가르쳐 보았다. 열심히 따라서 배우던 어느 날은 장단 맞추기를 너무 열심히 해서 선생님 허벅지가 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1년여 기간 동안 선생님과 재미있게 놀고 배우면서 친해졌다. 선생님과는 상담 종결로 헤어졌다.


여전히 엄마는 국악공연 준비와 가게운영으로 항상 바빴다
.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는 상담종결 후에도 선생님께 문자를 자주 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선생님은 가족과 함께 문배마을로 소풍 가자고 했다. 쑥스럽지만 문배마을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 처음 보는 낯선 선생님 친척과 눈도 마주치고 밥도 먹고 사진도 찍으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그날을 계기로 선생님과 만남은 계속되었다.


중딩에서 고딩으로 ~ 특수반 학생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엄마와 나는 많이 다퉜다. 내 의견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일반 고등학교의 특수반으로 진학을 결정해 버린 엄마가 미웠다. 교실이나 운동장에서 아이들 가운데 섬처럼 혼자 떠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외롭고 힘들었다. 임향숙 선생님께 내 고민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 편이 되어주었다. 엄마를 만나서 생각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복지센터 소장님과 상담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엄마는 나로서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학교를 옮기기로 해 주셨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동원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야호~!


이런 느낌 처음이야 ~ 동원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먼저 내게 다가와서 놀자고 했다. 일반 학교에서는 내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늘 혼자였다. 학교가 정말로 가기 싫었었다. 그런데 동원학교에 와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화장실 다니기가 불편한 친구를 도와 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화장실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미처 몰랐었다. 나는 지금까지 도움을 받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마냥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어린 남학생이 자꾸 놀려서 나를 힘들게 했다. 옛날 같으면 학교에 가기 싫다고 엄마에게 떼만 썼을 텐데. 이젠 용기가 생겼다. 같은 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들은 기꺼이 나로서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사는 것 같다. 그래서 학교생활이 만족스러웠다.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다 ~ 이후로 각종 운동경기를 통해서 나는 많은 사회적응 훈련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인라인스케이트 선수로 선발되어 동메달을 수상하고, 스케이트 쇼트트랙과 역도선수 등 다양한 종목으로 전문 감독에게 코치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연습과 체중 조절을 위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는 힘들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주변 선생님들의 격려와 위로를 받고 열심히 해서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우리 집에는 메달 숫자가 많아지고 엄마는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짜증이 줄어들고 기분 좋은 날이 많아졌다.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다 ~ 학교 졸업 후 전공과로 진학하지 않고 바로 호반보호작업센터로 출근했다. 프로그램생으로 있으면서 호반취타대에서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다. 참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각종 행사장에서 많은 사람 앞에 연주할 때는 긴장이 되었다. 실수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스트레스가 있기는 해도 단원들과 함께 연습하고 무대 공연하는 경험은 정말 좋았다. 그런데 취타대가 해체되고 다시 난타팀이 결성되었다. 멋있고 화려한 복장으로 많은 사람 앞에 서서 박자에 맞춰 두드리고 나면 가슴이 후련하다. 가르치는 선생님과 연습실로 이동해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는 정말 좋은 경험을 자주 하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공연 일정이 잡히면 임향숙선생님께 자랑스러운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문자로 알렸다. 바쁘지 않을 때는 찾아왔고 공연장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어주었다.


이 되어 새롭게 만나다 ~ 내 동생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강아지와 함께 엄마로부터 독립했다.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지금은 호반보호작업센터에서 근로장애인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중학교 때 상담 선생님으로 만났던 임향숙선생님을 또 강원도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하면서 반가워하셨다. 어렵고 힘들었을 때 위로가 되어준 선생님을 다시 만나서 든든했다. 빙긋 미소와 함께 다정하게 포옹할 때면 주변에서 부러워했다. 다른 이용인들에게 선생님은 내꺼라며 억지도 부렸다. 나름 으쓱했다.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어......오늘도 힘차게 으랏차차!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상처를 잘 이겨내고 오늘을 사는 내가 자랑스럽다. 강원도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의 이정식회장님은 나에게 아빠와 같은 존재이다. 엄마와의 갈등으로 힘겨루기 할 때는 회장님께서 해결사가 되어 주신다. 무섭고 엄하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려 주시는 분이다. 덕분에 우리는 많은 사회적응 기회를 누리고 있다. 오늘도 2018년 제38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훈련으로 바쁘다. 지도해주는 선생님 덕분에 이번에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대한민국에서 역도 하면 장미란선수를 떠올리지만, 장애인체육계에서 최고의 역도선수로는 단연코 임한울을 기억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