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행복한 아빠 이원진입니다. (장려상)
[강원도 장애인 자립생활수기 수상작 소개 ③] 이원진(지적장애/강원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삼척시지부)

김현동 승인 2018-12-04 14:57:50


▲ 이원진 씨 가족.

저는 올 해 서른셋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빠 아원진입니다.


저는 어린시절 일찍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며 남의 물건을 빼앗고 친구들도 괴롭히며 못 된 짓을 많이 하며 보냈습니다
.


그런 제가 지금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성인이 되어서도 기초생활수급비로 친구들과 놀러 다니며 술먹고 쓰러져 간질을 해서 응급실에 실려 다니며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


그러다가 지금의 지적장애인센터를 알게 되었지만 수업에 자주 빠지면서 센터도 잘 나가지 않고 그저 친구가 더 좋아 놀기만 했습니다
.


그런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부장님을 비롯해 모든 선생님들께서 센터에 나오기를 권유하고 바른길로 인도 하려 했지만 저는 아랑 곳 하지 않고 철 없이 싫다고 하고 저를 귀찮게 한다고 생각하며 뿌리쳤습니다
.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작은집에서 함께 살며 친구들을 불러 들여서 함께 보냈습니다
.


그러던 중 아내의 뱃속에 새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저는 깜짝 놀라서 이제 내가 책임을 져야할 가족이 생겼는데 이렇게 친구들만 좋아하며 살다가 큰일이 날 것 같았습니다
.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 누나들에게 결혼을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누나들은 지적장애인이 무슨 결혼이냐며 모질게 대하였습니다
. 이런 반대에 부딪힐 줄은 생각하지 못한 저는 아내와 뱃속의 생명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힘들었습니다.


결국 저와 아내는 살던 집에서 쫒겨 났고 오갈 데가 없이 거리를 방황하며 배가 자꾸 불러오는 아내를 데리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기도 하고 지적장애인 친구 집에서 자기도 하며 어떻게 할지 몰라 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습니다
.


결국 저는 센터에 찾아가서 지부장님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


지부장님께서는 저희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으시고
,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따뜻한 보금자리라도 마련해야 한다 하시며 복지관, 주민센터, 강원랜드복지재단을 통해서 살아 갈수 있도록 알아봐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 아담한 집도 마련해 주시고 도배
, 장판도 다시하고, 가전제품, 장롱도 모두 장만해 주셨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병원도 미리 알아봐주시고 예정일에 맞춰 예약도 했습니다
. 저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저희를 위해 끝까지 애써 주시고, 임신한 아내가 아이를 가져 힘들어 할 때도 가족과 같이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이제부터라도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습니다.


우리의 보금자리도 정리정돈도 센터에 함께 이용하는 형
, 누나, 동생들과 선생님들께서 도와 깨끗이 집을 단장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이곳저곳 후원을 받아서 집에 필요한 살림살이와 아기용품 등 필요한 것을 지원 받아 하나하나 마련하고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


작년 따뜻한 봄에 예쁜 공주가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 우리 둘은 아이의 이름을 해원이라 지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목욕시키기, 젖먹이기, 기저귀 갈아주기, 밤새도록 울다 재우고 힘들었지만, 그 중 가장 힘든 일은 해원이가 아플 때였습니다.


그러다가 천사같이 웃어주는 해원이를 보면 힘이 나고 저도 같이 웃게 되고
, 또 옹알옹알 엄마’, ‘아빠할 때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저를 이렇게 아끼며 키우셨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아장아장두 손 잡고 걸을 때쯤, 사랑하는 해원이의 첫 돌이 되었습니다. 센터와 자조모임에서 많은 준비를 해주시고 해원이의 돌잔치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저는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쉽지 않았습니다.


센터를 아내와 함께 다니면서 직업재활과 자립생활에 대해 열심히 배우고 익히던 중 센터에서 역도 훈련 중인 선수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 나도 힘이 좋은데 하는 생각에 역도 기구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43Kg의 작은 체구인데 가능 하겠느냐며 걱정 하셨지만 저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결국 해보라고 허락하셨습니다.


혹시라도 다칠까봐 지부장님께서 역도 기구를 이용할 때 자세와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


그리고 역도를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저의 체중은
43kg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를 배우며 훈련을 시작하고부터 저의 체력이 좋아지고 근육이 발달하여 50kg이 되었습니다.


저의 변화를 보시고 지부장님께서 데드리프트 해보라 하셨습니다
.


제가 무리 없이 하는 걸 보시고 놀라셨습니다
. 저에게 훈련을 하면 너는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역도선수로서 당당히 썰 수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


수개월 열심히 훈련한 저의 가능성을 보셨는지 지부장님께서 역도대회에도 출전해 보자며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서 저는 센터에서 수업 후
, 틈틈이 데드리프트와 스쿼트를 훈련하고 무엇이든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의지와 희망을 가지며 기량을 키우고, 꾸준히 훈련에 임하던 어느 날, 국장님께서 올해 너의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올해 저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 저는 힘이 났습니다. 더욱더 열심히 역도 훈련에 제 모든 열정을 쏟고 훈련에 임해서 전국역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대회를 다녀 온 저에게 아내와 딸 해원이도
아빠!’하며 축하해 줘서 어깨가 으쓱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역도대회에도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준비는 지적장애인센터와 삼척시 복지박람회 식전 행사로 추진해 주셨습니다
.


결혼식 날 하늘도 우리를 축복하는지 맑은 날씨와 많은 시민들 축복 속에서 저희는 백년의 가약을 맺었습니다
. 개구쟁이 딸 해원이도 엄마, 아빠를 축복해 주는 듯 해 맑게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되고
,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이 순간들이 꿈만 같아 가슴이 벅찼습니다. 끝까지 저의 끈을 놓치 않고 붙들어 주셔서 지금의 저희 가족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결혼식 후 저는 전국역도대회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


저는 더 큰 꿈을 품고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역도훈련에 더욱 매진하며 선수로서 발전하고 아내와 예쁜 딸 해원이를 키우며 센터에서 좋은 교육을 지금처럼 받겠습니다
.


무엇이든 저에게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있게 이끌어 주신 분들께 저는 보여드리겠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당당히 나가 설수 있도록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