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살며 사랑하며] 이 나라, 이 지역에 빛과 소금이 되는 양심을 갖자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8-05-02 09:19:39


연제철 본지 춘천지역기자

양심[良心]이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라고 한다.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한 번 자신의 양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과연 당신의 양심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나의 양심은 얼마나 무게가 나갈까 하는 의문도 갖게 된다.


비록 논리적 판단에 의존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형성과 함께 관계 맺어 온 관습을 경험에 의해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학습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현대 윤리학자들은 보고 있다
. 따라서 양심이라는 말은 사실상 도덕에 대한 내재적 기준이며 보다 직관적인 것이고 논리적 판단보다는 직관적 터부에 가까운 심리상태라고 한다. 이제 양심의 문제에 대하여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양심은 자신이 제어하고 지켜야 함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의무인 것이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열기가 점점 달아오른다. 지역주민의 복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십 년 간 노력하며 얻은 정석으로, 또는 정당에 힘입어 정치인 생활을 하며 얻은 노하우로 국민 편에 서기위해 출마하게 되었다는 정견을 들고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도 많다.


여기저기 선거 사무소가 차려지고 플래카드가 나붙어있다
.


이 지역에 살지 않고 타 지역에 살다가 메뚜기도 한 철이라 내가 최고의 양심자이고
, 지역을 살리는 파수꾼이라는 미명아래 출마자들이 나선다. 속된 말로 별로 하는 일도 없고 직업도 변변치 않으니 기회는 이 때라 앞뒤 분별없이 덥석 물고 본다고 할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출마자는 후회한다. 낙선되고 나서야 자기를 아는 안타까운 결실에 통곡을 하며 후회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찌하랴.


사람이 사람으로 고귀하다는 것은 사람에겐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양심을 책망할 때는, 세상 사람이 다 칭찬하고 존경한다고 해도 자신의 고통은 면할 길이 없다. 반면에 양심이 칭찬할 때는, 세상 사람 모두가 달려들어 저주를 퍼붓고, 책망하고, 고통을 준다 해도 마음에는 평화가 있고 대담함에 있다. 이처럼 양심은 귀한 것이다.


우리의 양심이 늘 칭찬만 하는 것은 아니다
. 양심이 수차례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을 속이고 허울 좋은 입담과 행동으로 모든 일을 하게 되면 그 양심은 세월이 갈수록 때를 반복 할수록 더러워질 수밖에 없고 왜곡되어 비극을 부른다.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어서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다
. 개인이든, 국가이든 양심의 소리는 언제나 맛좋고 단 사탕처럼 들리고 숲속에 자유로이 날며 지저귀는 아름다운 새 울음처럼 조용하게 마음에 닿는 소리로 들린다.


임마누엘 칸트는
하늘에 별이 빛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에는 도덕의식이 있다. 도덕의식이 곧 양심이다.”라고 했다.


정치는 자신이 머무는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 나라를 위해, 지역을 위해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나보다 남의 입장에 서서 자신을 태워서라도 희망을 갖게 하고 잠자는 것은 깨워야 한다.


인생은 채우기만 할 수는 없으며
, 때로는 비워야 할 때도 있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으로 채울까를 항상 마음의 저울로 측정해야 한다. 열정이 지나친 탐욕으로 변해선 안 되고 또한 과도한 집착으로 변하지 않아야 하며 자신감이 자만으로 바뀌지 않도록 하고 여유로움이 게으름으로 변해서도 안 됨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우리 마음속엔 양심이 있다
. 양심은 인간이 자신과 이웃을 알아가며 삶을 살아가는 목적대로 살아가도록 기능해주는 것이다. 타락으로 파괴돼 처음처럼 온전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서 기능하여 옳은 방향을 가르쳐준다.


오늘도 거울 앞에 서서 현재 내 모습을 보며
, 발밑에 놓인 양심 저울에 자신의 양심을 달아 얼마나 무게가 나가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지내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