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 두려우면 지는 거야!
[강원도 장애인 자립생활수기 수상작 소개 ①] 이기웅(시각장애/강원DPI 원주지회)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8-11-13 11:06:39


▲ 이기웅(시각장애/강원DPI 원주지회)


돌아보면 나의 인생은 언제나 한 발씩 늦었다.


강원도 평창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살다가
,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화천으로 이사를 했다. 입학 시기를 놓친 탓에 사정을 하여 겨우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쳤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고등학교는 두 해나 늦게 입학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두해 늦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단기병으로 입대를 했고
, 제대 후에는 바로 서울지하철공사에 합격을 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기에 대학은 아예 가 보지도 못 했다.


그렇게 다니게 된 직장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해 다른 공공기관에 응시를 하기도 했다
.


그러던 중 몇 군데에 합격을 하기도 했지만 포기를 했고
, 결국은 직장을 그만 두고 말았다.


짧지만 긴 세상살이 속에서 혹독한 경험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가진 것이라곤 시험 잘 치르는 기술
, 그것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에겐 문제를 해결하고 돌파할 능력은 없었다. 그저 잔재주가 있을 뿐이었다. 그 해는 나에겐 지옥 같은 해로 기억된다.

 

한 해 동안에 급성폐결핵, 식도협착, 뇌종양이 왔으며, 당뇨의 합병증으로 대 수술을 세 번이나 했다. 그 과정에서 실명까지 찾아왔다. 실명이라는 현실을 접하고 겪는 좌절이라는 과정이 찾아왔고 그 과정 속에서 결국 장애를 미워할 수 없는 나의 동반자라 생각하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 동반자가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 그 시각장애라는 동반자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니게 살아 왔으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뭔가 깨달은 게 없니
? 이대로 죽음을 맞는다면 정말 억울하지 않겠어?


뭔가 해 보자!'라고...


그 부추김에 깊지는 않지만 잔재주에 능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고
,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가운데 맨땅에 헤딩하듯 창업을 했다.


창업을 하고도 나는 그동안 살아온 내 모습처럼
, 완성되지 못한 제품만을 개발하고 있었다. 막상 팔 물건도 없었고, 팔리지도 않을 모양새의 물건들만 괴물처럼 구석에 쌓이게 되었다. 허울뿐인 목표와 희망이 다 소진되기도 전에 나의 몸과 마음은 부패되고 시들어갔고 암담한 현실에 포기라는 단어를 마음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편안한 장애인으로 살아갈 것을... 수많은 후회도 했다.


그렇다고 사실 그때까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 비록 당장 쓸 수는 없었지만 그간 내 손에는 수십 개의 특허와 실용신안, 그리고 여러 가지의 완성되지 못한 제품들이 들려있었다. 그냥은 포기할 수 없었다.


너는 원래 가진 게 없었잖아
. 다시 시작해서 망해도 넌 아무것도 손해 볼 게 없어.


하는데 까지 또 해 보고 안 되면 또 예전처럼 가진 거 없이 그냥 살면 되잖아
?


동반자가 나에게 속삭였다
. 그 유혹에 넘어가 보기로 마음먹고, 정식으로 파산을 하고 면책 신청도 했다.

 

다시 시작해 보자!'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했다.


그러자 운명처럼 나와 같은 성공이라는 마술에 걸린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 우리는 희망이라는 신비한 약을 먹은 채 파트너가 되었다. 썩어 들어가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었고, 개발하던 제품을 조금 다듬어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파산을 한 지 두해가 지나서 처음으로 매출 1억원이라는 꿈같은 현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두해가 더 지났을 때
, 매출액은 3억원을 넘어 있었다. 몇 해 전에 비하면 이 얼마나 눈부신 성장이던가!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처럼 실속은 없었다. 주로 직접 설치를 해야 하고 날씨와 계절요인에 크게 좌우되는 둥글지 못한 아이템이었다.


일이 없어도 항상 최소한의 직원은 유지를 해야 했고 계속적으로 발생되는
AS는 우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감한 결심을 해야만 했다.


'
매일 팔리는 물건이 필요해! 금액이 작더라도...'


그래서 우리는 그런 아이템을 찾기로 했다
. 그러던 중 눈에 들어온 것이 내가 2016년도에 개발한 흉터 확대 방지용 밴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음성전달이 가능한 마스크였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 두 가지 아이템은 중기청 과제로 선정되었고, 지원을 받으며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가지는 이미 특허와 디자인, 상표가 등록되었고 우리가 가장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이 두 가지 아이템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데 진정으로 최선을 다했다.

 

밴드는 처음의 아이디어와 토의 끝에 제조사와의 협업으로 완성이 되었지만 마스크는 달랐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서 나는 하루에 여덟 시간 이상을 상상해야만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면서 멍청한 사람이라고 수근댔지만 나는 조용하고도 치열하게 마스크의 모습을 만들어 내려고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매출은 급감했고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게 되자 직원에게 삿대질을 당하고 노동청에 고발을 당하기에 이르렀다
. 벌금을 내지 못해서 야간에 경찰로부터 연행을 당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엎어지고 구르면서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다음날 아침 나의 파트너는 분노의 눈물을 보였다.


차라리 기초수급자로 살 것을...'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누나의 카드를 빌려 생활하던 중 한도초과에 이르렀을 때는 끼니조차도 걸러야 했고 나의 파트너와 무수히 싸우기도 했다.


모든 원인은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과거에 이랬어야했고 저랬어야했는데...’ 나의 판단부족과 능력의 한계로 사업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나의 과거가 창피했다. 깊고 깊은 가난 속에서도 나는 제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마음과 몸을 다 바쳤고 그것은 나의 파트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스크는 쉽게 만들어 지지 않았다
. 아이디어를 형태로 만들어 낼 때마다 3D프린트에만 2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었고 그런 방식으로 디자인 비용에만 2천만원이 투입되었다.


다행히 비용은 원주대학이나 창진원에서 소규모로 진행하는 지원사업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점심을 해결할 무엇은 없었다
. 어쩌다 가지고 있던 물건이 몇 개씩 팔리면 그 것으로 직원들의 식대를 지급하였다.

하지만 그 직원은 우리가 싸온 도시락의 김치냄새가 역하다고 투덜대기 일쑤였다.


그러던 직원들은 불안해하면서 하나둘씩 모두 떠나갔다
. 엉성한 흔적만을 남긴 채... 그런 와중에도 아주 조금씩, 제품은 완성되어 갔다.


이제 그 기능성 밴드는 궁금이밴드라는 이름으로 출시가 되었고
, 마스크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파트너는 마스크의 필터를 찾아 전주까지 먼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아직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실체도 없는 제품을 가지고 우리는 허공에 헤엄치고 있었다. 장애 자체는 우리들이 넘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장애인으로서 수입 없이 백수생활을 하면 정부나 지자체 또는 각종 민간단체에서 지원해 주지만
, 사업자등록을 하고 움직이기 위해 차량을 구입하면 그 순간 모든 지원이 끊기는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제도적 현실이다.


그러한 장애인으로서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제품을 만들어 수익을 내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떳떳한 국민이 되고 싶어 홀로서기를 감행하였다
.

 

하지만 아직은 홀로서기가 어렵기만 한,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초보 장애인 사업가이다. 아이가 젖을 떼었다고 바로 독립할 수는 없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매출도 거의 없는 영세한 사업자는 국세, 지방세가 체납되었다고 정부의 사업은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직 자력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하여야 한다
.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기에 성공을 확신한다.


이미 절반은 이루어진 상태로
,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마스크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장애를 미워하지 않는다
.


비장애인 또한 혼자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


나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하는 이의 도움으로 성공을 위해서 차분히 걸어가고 있다
.


지금까지 눈물 나게 어려운 일도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겠지만 먼 훗날에는 추억할 과거가 될 것이다
. 그렇게 모인 것들이 나의 소중한 재산인 경험이다.


나는 돈이 없어 끼니를 굶을 때도 올해의 목표로 정했던 매출
50억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나에게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있다.


그 기간 동안 열정을 불태우면 연내 매출액
50억원은 충분히 가능한 숫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운도 따라줘야 하겠지만 말이다.)


신께서는 보이는 것에서 머무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상을 보라고
, 나에게 시각장애라는 선물을 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꿈꾸는 목표의 결과도 주실 것으로 믿고 또 믿는다. 그 믿음 때문이었는지 오늘 우리는 그 선물의 일부를 확인하는 큰 기쁨을 느꼈다.


궁금이 밴드'를 개발한 지 3년 만에 단순 특허에서 상표등록을 하고 식약청 품목허가를 받아 이제야 생산에 이르렀는데, 오늘은 조달청에서 운영하는 벤처나라의 벤처창업혁신조달상품에 선정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벤처나라에 신청을 하고 간절히 기도를 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 1급 시각장애인이 개발한 제품이 일반인들이 개발한 제품과 기술력이나 품질에서 대등한 입장으로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에 짜릿한 기쁨을 맛보았다.


그 황홀한 순간에 나는 또 다시 이렇게 외쳐본다
.


파이팅
! 쫄지마! 두려우면 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