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들] 멜로디를 타고 세상 밖으로 나온 모자(母子)
전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가수 김형천(예명 철부지) 군 / 좌절을 희망으로 바꾼 사랑의 화신 어머니 정려운(시인) 여사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8-10-10 09:54:34


▲ 본지와 인터뷰하는 정려운 시인과 아들 가수 철부지.

 


장애인과 그 장애인가족들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교훈 주고파

     

 

지적발달장애는 항구적인 보호가 필요한 장애유형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대인관계기술, 사회적응력, 학습능력, 언어능력 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 부모의 심리적 부담과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다.


홀로서기가 불가능하다고 일찌감치 포기해서 특수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이 가정이나 시설에 묻혀서 생을 마감하는 지적장애인들
! 하지만 최근 이러한 편견을 깨고 비장애인 전유물처럼 인식된 가수로 데뷔한, 지적장애2급 김형천(예명 철부지/30) 군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4, 도내 장애인 전문지인 본지가 김형천 군 꿈의 터전, 원주시 귀래면 소재 까페(숲에 향기)를 방문해 오늘이 있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1. 전국에서 유일한 지적장애 가수를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련된 외모와 손님을 맞이하는 매너가 일류 연예인입니다. 우선 가수로 데뷔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A. 5, 어머니가 쓴 노랫말에 원종락 작곡가가 곡을 붙여 음반발매 숲에 향기까페에서 첫 데뷔무대 열어 7, 대한가수협회 회원증 취득 노래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자 만성질환도 자연치유

정려운(어머니): 돌아보면 혹독한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 지난 5, 우리 까페 야외무대에서 관객 2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첫 데뷔무대를 가졌지요. 음반 타이틀곡은 당신의 선물”, “오뚜기처럼”, “꽃바람이고요. 제가 시를 쓰고 원종락 작곡가님이 곡을 붙였습니다. 마침 잘 아는 유명하신 분이 철부지라는 예명을 지어 주셨고 7월에 대한가수협회로부터 가수증을 받았습니다.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잘 불렀지요
. 그러나 본격적으로 재능을 키워주기 시작한 것은 3년 되었어요. 잠깐 동안 삶이 힘든 어르신을 모신 적이 있었는데 아들이 그 분을 따라 복지센터 난타반과 노래교실에 다녔었고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노래만큼은 비장애인들에게 뒤지지 않기에 그것을 무기삼아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로 결심하고 용기를 냈습니다
. 혈압 등 건강상의 복합적인 문제도 있었는데 음악에 전념하고부터 자연치유가 되었고 이제는 약도 끊었습니다. 알고 보니 음악은 제 아들에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건강을 찾아준 생명 같은 존재였지요.

 



김형천(철부지) 군의 첫 앨범.



Q 2. 어머니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사랑이 오늘을 만들었군요. 장애 자녀를 기르면서 경험한 애환을 도내 장애인 가족들에게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A. 장애자녀를 둔 어머니의 형벌 같은 상처 초등학교 5학년 때 지적장애인 판정 아들이 자랄수록 커지는 절망감에 잠 못 들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 꿇은 학부모를 언론에서 보고 눈물 흘려 부모 사후에도 걱정 없는 지적장애인 사회적 안전망 절실

 

정려운(어머니): 모든 장애인 가족이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상처로 얼룩진 시간이었습니다. 아들이 자랄수록 체념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이 늘어나서 절망하는 엄마의 심정을 상상해보세요. 위축되어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잠 못 이루기도 했지요. 아들이 선천적으로 시력이 조금 나빠서 특수학교에 다녔지만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또래보다 느리지만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던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혹독한 반복교육을 감행했지요
. 지적장애인이 홀로서기 힘든 현실에서 제가 늙고 세상을 떠난 후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이나마 가능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란 뒤에는 성적인 실수라도 할까봐 늘 가슴 조였습니다.


마치 형을 사는 죄인처럼 살아왔기에 지난해 뉴스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 꿇은 부모들을 보고 동병상련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 지적장애인들이 부모 사후에도 비장애인들처럼 살 수 있도록 든든한 안전망이 생겨나고 사회의 편견도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Q 3. 절망을 이겨낸 피와 눈물의 세월을 이해합니다. 지적장애인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아들이 가수 철부지가 된 이후에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A. 노래를 통해 장애라는 굴레를 잠시라도 벗는 아들에게 감동 가사 외우기, 박자 익히기 무대 인사 등 무한반복 훈련 시인인 어머니도 아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파 열심히 공부 중 mbc강원365 등 늘어나는 출연 요청 더 많은 기회와 전국적인 무대에 서고파

 

정려운(어머니): 철부지라는 이름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장애라는 굴레를 벗어버린 것 같아요. 가사 한 줄 외는 데도 수없는 반복이 필요했고 관객 앞에서 한마디 인사말도 두 시간 씩 30일 가까이 연습을 했지만 마다않고 따라주니 대견할 뿐이지요. 가끔은 제가 너무 혹독한 엄마가 아닐까 자책할 때도 있지만 노력하는 철부지를 보면서 위안을 삼지요. 생각해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즐거움이 아닌가합니다. 저도 철부지 때문에 시 낭송과 글을 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철부지가 공연이 늘어날수록 성취감을 느끼고 활기차져서 다행입니다
. 저도 매니저로서 바빠졌지요. 기억나는 무대는 명장 수여식 축하 공연, 귀래면민 체육대회, 라이온스 회장 이취임식, 영월공고 체육대회, 고니골 다락시회모임, 초록우산과 노인시설 위문, 원주종합체육관 체육대회 등 많습니다.


특히 지난
9월 초에는 상지영서대 사회복지과에서 저는 장애인부모로서 강의를 했고 철부지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한 104mbc 강원365에도 출연했는데 감사할 뿐입니다. 하지만 더욱 많은 기회가 오고 나아가 전국적인 무대에 설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Q 4. 가수로서 매니저로서 이제는 공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그러면 당사자인 철부지군에게 묻습니다. 가수가 된 소감과 희망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A. 노래와 어머니가 있어 행복한 철부지 장애인들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교훈 주고파

 

김형천(철부지):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어머니가 있어서 무대에서도 떨리지 않아요. 그리고 저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노력하면 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희망이 있다면 열린음악회, 세종문화회관 같은 큰 무대에서 서보고 싶어요.

 

Q 5. 말씀도 잘 하시는군요. 끝으로 어머니의 희망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동정이 아닌, 실력을 인정받는 가수가 되기 위해 기초다지기 주력 수입이 발생하면 장애인 돕고 싶어 노래를 통해 세상으로 나온 길이 막히지 않도록 지속적인 성원요청 장애인 모두가 존중받는 날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기를

 

정려운(어머니): 철부지가 동정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가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 저는 반주를 해주려고 기타를 배우고 있지요. 아침마다 발성 연습을 하고 전문가를 모셔다 개인지도를 받고 있어요. 또한 철부지 노래를 만들어 주신 작곡가 원종락 선생님께 감사드리면서 지속적인 지도를 받고 있답니다.


저와 철부지는 만일 수입이 생기면
10분의 1은 장애인들 재활에 쓰려고 합니다. 다행히도 경제적으로 곤고하지는 않아서 세상이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면 언제라도 내려올 각오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 모자의 용기가 외면당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을 받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것은 장애인들에게 꿈을 주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강원도 장애인과 가족여러분
!


우리 모두 평등하고 존중받는 그날을 위해 서로 돕고 각자가 잠재력을 개발하면서 힘차게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취재 및 정리 지소현 본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