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들] 장애를 희망으로, 희망을 승리로, “이원규 춘천시의회 의장”
사상 처음 만장일치 장애인의장, 화합의 귀감이 된 인물

강원장애인신문사 승인 2018-07-24 10:36:56

20대 초반 정계입문, 35세 첫 출마, 49세 첫 당선, 62세 의장 등극

 

 

각계각층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도 도내 10만여 장애인 중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지위를 확보하고 역량을 펼치는 사례가 미약하다. 이러한 분위기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이 수부도시 춘천시의회에서는 이원규 의원(지체3/62/4)이 만장일치로 상반기 의장에 등극했다. 이는 비장애인과 동일선상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정계에서 얻은 쾌거로서 많은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도전의 꿈을 주고 있다. 본사 이사진은 지난 20일 오후 이원규 의장을 만나 그 동안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원규 춘천시의장과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이원규 춘천시의회 의장이 본지 기연옥 이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Q1. 우선 4선에 성공하시고 30만 춘천시민을 대변하는 시의회의 의장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장애를 극복한 저력으로 누구보다 잘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선 의장님의 인간적 면모부터 말씀 부탁드립니다. 

 

홍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남 장애의 아픔을 의의를 위한 활동으로 승화

20대 민주화 운동에 입문 부인과 슬하에 11(오늘이 있기까지 고생한 부인에게 감사)


A.
감사합니다. 양극화가 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선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아우르는 통합의 본보기로서 혼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저는
56(62)홍천군 두촌면에서 농부의 아들로 장남으로 태어났지요. 두 살 때 그 시절 흔하던 소아마비를 앓게 되고 오늘 날까지 지체3급 장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뛰어노는 친구들 틈에서 남모르는 고독감을 체험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이웃의 편견어린 시선에 수치감도 맛보았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좌절과 분노를 키우기보다는 오히려 보란 듯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대인관계를 해왔으며 약자에 대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정의감을 불태우며 삶을 엮어왔습니다.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한
70년대 초, “민청학련사건(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이 있었지요. 다시 말해 박정희 정권이 학생운동권 관련자들을 국가전복 음모꾼들로 몰아서 구속하거나 사형탄압한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접한 20대 초반인 저는 야당인 신민당에 입당해 민주화추친협의회등에서 활동을 했지요.


물론 결혼도 하고 슬하에
11녀를 두었고요, 넉넉지 않은 살림은 비장애인인 집사람이 전적으로 꾸려가다시피 했습니다. 지금은 아들딸 모두 결혼하여 손주까지 얻었습니다. 돌아보니 변변치 못한 장애인인 저와 한 몸이 되어 가정의 복지를 책임져주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다리가 되어준 집사람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Q2. 젊은 시절이 온통 고난의 길이었군요. 이는 풀뿌리 정치인인 시의원이 되신 동기로 보여 집니다. 처음 시작한 때와 그동안의 일들이 궁금합니다.

 

92(35) 첫 출마를 포함해 4번의 낙선, 2006년 초선 당선까지 15년간 끝없는 도전

주민들에게 보답하고자 열정을 불태운 의정활동 올해 4선 의원, 만장일치 의장 등극


A.
제가 35세 되던 해, 92년 처음 시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습니다. 그 후 선거 때마다 출마했으나 번번이 낙선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15년간 4번의 고배를 마신 후, 2006년 지방선거에서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더욱 열심히 지역구인 효자 12동을 절뚝거리면서 외치고 다녔으며 드디어 첫 당선의 감격을 얻었지요. 저를 선택해주신 주민들이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보답하고 싶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진심은 통한다더니 그 후에는 출마할 때마다 당선되었고, 올해 4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그동안 매번 의원들 간에 알력과 배신
, 쟁투 등으로 지탄을 받았던 의장선거에서 초당적이며 만장일치로 선출되어 기쁩니다. 소통과 통합의 본보기 역할을 하라는 명령으로 알고 동료의원들, 그리고 행정, 시민들 중심에서 혼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돌아보면 청춘을 다 바쳐서 지금까지 걸어온 외길이니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습니다.

 

Q3.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동안 춘천시의원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적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포기하지 않는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기억에 남음 춘천시민의 재산권을 지키고 골목 곳곳을 살핀 것이 공적 모니터링단이 뽑은 최우수의원 상이 기억에 남음


A.
우선 네 번의 실패와 네 번의 승리를 경험한 저의 풀뿌리 정치인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적입니다. 그래서 장애인동지들에게 무엇이든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세 걸음 걸을 때 우리들은 한 걸음밖에 못 걸어도 정신이 굳건하면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뚜렷한 공적은 미군부대부지 관련 위원장을 한 것입니다
. 또한 2007년 도심에 인접한 만천리 춘천시유림과 도심과 떨어진 강원일보사 소유 신동면 혈동리 사유지 맞교환 논쟁이 있었지요. 이를 동료 시의원들과 합심해 제지함으로서 시민의 재산을 지켜낸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밖에도 도시가스 배관설치, 노후 수도배관 교체, 동내 뒷골목 CCTV설치, 효자동 주차장 설치, 장애인, 여성, 노인, 아동 분야를 공부하고 예산 확보 등에 힘써 왔습니다. 그 결과 시민 대표들로 구성된 의정모니터 단이 뽑은 최우수 시의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 춘천시 2018양성평등대회에서 꽃다발을 받는 이원규 의장.

 


Q4. 다양한 분야에서 기여하신 점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다면 춘천시 장애인복지에 대하여 개인적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각 장애유형마다 욕구도 다르지만 서로 돕고 사는 것 기대 집단 이기주의보다는 한 목소리를 내는 화합 필요 당사자로서 장애인들 민원에 귀 기울일 것임

 

A. 저는 장애인입니다. 당사자만이 아는 절대고통을 압니다. 춘천시에는 약 16천 여 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15개 장애유형별로 접근법과 예산이 다르지만 누구나 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소수의 장애인들과 소집단의 단체라도 그분들의 욕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힘 있는 장애인단체나 능력 있는 장애인이 그렇지 못한 분들을 도와주고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고 목소리를 함께 내야 할 때는 화합했으면 합니다. 제가 항상 귀를 열어 놓고 도울 것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Q5. 장애유형별로 제도나 예산의 접근이 다르지만 아픔만은 함께 하자는 말씀 동감합니다. 끝으로 춘천시를 벗어나 장애인지도자로서 도내 장애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십시오. 

 

이동이 어려운 산간지역에 장애인 복지에 관심 집중 필요 도내 10만 장애인들의 당당한 삶 기대


A.
강원도는 산이 많고 이동 거리가 먼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접근상 어려움이 있는 지역이 있다고 봅니다. 고독사, 혼자 사는 가구 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많은 장애인들이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장애인단체, 시설, 기관 등에서 오지에 사는 장애인들에게 더욱 관심 가져 주시길 우선 부탁드립니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분들도 작은 일에도 감사하면서 어려움이 있다면 숨기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 주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장애인은 신체적 조건이 불편할 뿐, 평등하고 존엄한 인간임으로 언제 어디서든 기죽지 말자고 외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요 약력


춘천시의회 : 내무위원회 위원장, 운영위원회 위원장, 미군부대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 결산 특별위원회 위원장


사회활동 경력 : 춘천고등학교 총동창회 이사, 강원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강원방송 시청자자문위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등급판정 심사위원, 캠프페이지 환경정화 자문위원, YWCA 춘천여성인력개발센터 운영위원, 한림성심대 일자리창출위원, 춘천시 생활보장 위원, 위 스타트 춘천마을 운영위원, 춘천우체국 고객대표 위원, 춘천민주화동지 회장, 4.19선양회 춘천시지회장, 재춘홍천군민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등

    인터뷰 정리
본지 지소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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